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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ong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어딘가에 시원함이 있어서다.' 스치듯 지나는에어컨 광고 카피에 귀가 쫑긋했다. 머릿속에서 텍스트가 해체 되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카피라이터가 누구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예술은 본디 지극히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누구나 겪지만 그것을 재조명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재조명은 기술이고 관심이다. 관심은 레토릭을 통해 명문이 되고 예술이 되어 영향을 미친다. 한구절의 글귀가 사람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사소한 관심과 표현이 결국 삶의 질을 높이고 가는길을 가꾼다. 늘 예술속에 살지만 결국은 잡아내는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보물 찾기와 같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 독특한 복지가 있다. '수요시식회'. 미식회가 아니라 시식회다. 먹는 모임인데 맛있는..
밤은 무한의 공간이다. 어둠은 창조의 시작이며 적막은 생각의 태동이다. 어둠속에서 밝음을 보고 고요함속에서 생각의 소리를 듣는다. 습관이 아침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지만 나를 자연상태 그대로 놔둔다면 아마도 매일 늦은밤까지 잠에 들지 않을 것이다. 업무는 오전에 효율이 나지만 생각은 밤이라야 제역할을 한다. 밤에 들여다보는 책은 귓가에 속삭이는 할머니 목소리 같다. 쏙쏙 와닿는 이야기들은 깊숙히 나를 끌고 들어간다. 책상 언저리 스탠드 등불이 비추는 오십센티 남짓한 공간은 밤과 책이 어우러지는 하루의 클라이막스다. 여름밤 개구리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여오면,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가 발빝에서 들려오면, 어릴적 어느순간의 어느 지점으로 깜빡 이동하는것 같다. 언제인지 모호하지만 분명했던 어느 순간, 시간이 겹..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앙드레 가뇽이 설계해 놓은 정성스러운 소리의 배열을 바탕으로 김포의 평야를 가로질러 새벽 어스름 들녘을 바라보는 일, 한강 동쪽 허리에 얹혀 올라오는 어스름 해를 바라보는 일, 만일 사람들의 영혼이 세상 어디에선가 만들어 진다면 아마, 이 새벽녘 들판과 붉은 공기의 사이 어디쯤이 아닐까. 창을 통해 비친 붉은 기 도는 햇볕이 지하철 바닥에 물감 처럼 쏟아지는 일, 자리에 앉기 바쁘게 눈을 붙이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사람을 지켜보는 일, 지하철의 흔들림에 꼭 맞게 내쪽으로 기울어 오는 긴 생머리 아가씨의 샴푸냄새에 기분좋아지는 일, 어느 건물에서 청소를 맡은 아주머니들이 일터로 향하며 재잘 이야기 나누는 얼굴을 보는 일,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이 주인을 기다리며 비워져 있는 일, 사람..
미키유천인지 믹키유천인지, 화장실에서 했다고 욕을 집어먹는다. 화장실에서 관계를 가진게 잘못인가. 각자의 취향이란게 있는거지. 아마도 여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이유는, 믹키유천의 고운 이미지에 대한 환상이 깨졌기 때문일것이다. 결국 그녀들은 또 한번 '남자들은 다 똑같다' 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앞에서 무력해야 했다. 그런데 그 대열에 우리 와이프가 끼어있었다. 밥먹다 말고 열을 올리는 모습이 정말 우스웠다. 결혼 3년차 주부가 이모양이니 사춘기 소녀들은 얼마나 상처가 크겠나. 세상 다 끝난 사람처럼 방에 틀어박혀 울면서 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성적 환상이 있다. 특히 남성은 더욱 그렇다. 시기적 차이는 있겠지만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자신이 좋아..
서로 등 돌리고 앉아 각자 책을 읽고 있지만 내생각엔 이게 부부다. 아내가 넘기는 책장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넘어가는 책장 만큼 감동의 폭으로 삶이 풍요로워짐에 감사한다. 각자의 세계를 여행하다 멈추면 그 여행기를 소소하게 공유하는 햇살이 저무는 금요일 오후. 같은 취미를 갖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확률로도 말 할 수 없는 행운. 등을 맞대고 책장을 넘기면, 타고 넘어오는 심장소리가 아내의 사랑을 알린다. 밀거니 받거니, 서로의 무게가 편안하다.
내가 지금까지 몇 번의 결혼식을 보았을까. 서른이 넘어서 다녀본 결혼식만 헤아려도 50번은 되지 않을까. 그간 보아온 모든 결혼식들이 모두 고귀하고, 소중하며, 저마다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두 말할 것 없지만 오늘 남형이의 결혼식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결혼식보다 인상깊었다. 누군가 내게 어떤 결혼식이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냐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늘의 결혼식을 떠올릴 것이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많은 이야길 나눠온 남형이. 그를 통해 들어온 그의 가족들은 마치 소설속 주인공처럼 내 기억속에 나만의 이미지로 간직되어 있었다. 오늘 소설로 읽던 작품을 영화로 보듯 남형이의 가족을 뵈었다. 축복이 가득한 식장에서 뵌 남형이의 아버지는 순박하셨고, 누나는 예뻤다. 세상을 함부로 살아..
사막에서 새 풀을 찾아 쉴새없이 달리는 양들은 잠잘 때와 쉴 때에만 제 뼈가 자란다 푸른 나무들은 겨울에만 나이테가 자라고 꽃들은 캄캄한 밤중에만 그 키가 자란다 사람도 바쁜 마음을 멈추고 읽고 꿈꾸고 생각하고 돌아볼 때만 그 사람이 자란다 그대여, 이유 없는 이유처럼 뼈아프고 슬프고 고독할 때 감사하라, 내 사람이 크는 것이니 힘들지 않고 어찌 힘이 생기며 겨울 없이 어찌 뜨거움이 달아오르며 캄캄한 시간들 없이 무엇으로 정신의 키가 커 나올 수 있겠는가 - 박노해, 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 오다 가다 우연히 읽게된 시구가 맘에 와닿아 지인에게 보냈더니 요즘 힘든일이 있냐한다. 굳이 힘든일이 없어도 좋은 글에 맘을 담는 것인데,
하루라는 이름은 또다른 하루의 사이에서 그 경계가 허물어져 간다. 반복되는 할머니의 하루는 하루의 의미를 잃고 무뎌져 오로지 드라마로 일주일을 기억하며 할아버지의 제사로 일년을 기린다. 이제는 아버지의 기일이 더해졌다. 사건으로 인생을 추리고 남은 기억들로 삶의 길이를 가늠한다. 기억나는 일들이 줄어들수록 삶은 짧아지고 반복되는 하루가 많아질수록 하루는 더 길어진다. 하루가 일년같고 일년이 하루같은 할머니의 삶은 첫페이지를 펴자마자 마지막 페이지로 치닫는 마법같을 것이었다. '인생이 어찌 이렇게도 흐르냐.' 할머니의 읊조림은 허망함도 무덤덤함도 아닌 세월에 대한 실증적인 체감이자 일컴음이다. 이제 할머니는 몇 년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같이 들여다 보면서도 몰랐던 베란다 앞에 놓인 소나무가 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