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Song

미키유천 사건을 보면서 본문

되짚어보는 일상

미키유천 사건을 보면서

꽃노래 2016. 6. 17. 20:42
 
미키유천인지 믹키유천인지, 화장실에서 했다고 욕을 집어먹는다.
화장실에서 관계를 가진게 잘못인가. 각자의 취향이란게 있는거지. 
아마도 여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이유는, 믹키유천의 고운 이미지에 대한 환상이 깨졌기 때문일것이다. 
결국 그녀들은 또 한번 '남자들은 다 똑같다' 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앞에서 무력해야 했다.  
그런데 그 대열에 우리 와이프가 끼어있었다. 밥먹다 말고 열을 올리는 모습이 정말 우스웠다. 
결혼 3년차 주부가 이모양이니 사춘기 소녀들은 얼마나 상처가 크겠나. 세상 다 끝난 사람처럼 방에 틀어박혀 울면서 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성적 환상이 있다. 특히 남성은 더욱 그렇다.
시기적 차이는 있겠지만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은밀하게 떠올려본다.
순진한 여성들은 이런말을 들으면 나를 변태라고 손가락질 하겠지만, 남자의 호기심이 대저 그렇다.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생물학적 문제다.  오히려 그 시절에 '아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고 고개질을 하고 스스로 머릿속을 제한한다면, 
그 아이는 오히려 일반적인 아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공공장소에 대한 성적 환상은 일반적으로 실현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큰 환상으로 자리매김한다. 
문학작품에도, 영화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타부의 이야기들은 시간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보다 더 앞선, 
상상과 생물학적 특성이 빚어낸 당연한 욕구다.  제한된 것에 대해 더욱 호기심을 느끼고 금기된 것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에도 굳이 뒤를 돌아봐 돌이 된 옛날 이야기는 동양에도, 서양에도 모두 존재한다. 그게 본성이기 때문이다. 

섹스와 사랑의 등식이 성립된 것은 인류 역사상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섹스에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강박은 자손보전의 의미에서 벗어나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근대의 이데올로기다. 가까운 과거를 두고보더라도 일부 다처제도 사랑이 전제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면 바로 어제 오늘의 일에 불과하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배설의 공간이다. 한창의 나이에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구가 극에 달하도록 억눌려있을 그에게 화장실은 욕구 해결의 상징성이 결합된 일종의 컴플렉스일 수 있다. 범죄행위를 저질렀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면 개인의 페티쉬를 괴벽과 변태로 몰아세울 일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의 심리야 어떻든 화장실과 미키유천이라는 미소년 연예인의 이미지가 콜라보로 빚어낸 충격은 상당한것 같다. 적어도 그녀들에게는. 

어쨌든, 이미지로 먹고살아야 하는 연예인의 특성상 이번 이슈는 한 연예인의 생명이 걸린 일이기도 하다. 공인의 성적 스캔들에 대해 많이 관대해진 시대이긴 하지만, 정황상 가해자로 몰리는 그가 무탈하게 극복하기엔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여자들이여, 자신의 상상이 깨어진 것을 두고 또 남자들을 적으로 몰아가지 말 진저. 그대들의 상실감은 내 이해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