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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어떤 결혼식이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냐고 묻는다면 본문

되짚어보는 일상

누군가 내게 어떤 결혼식이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냐고 묻는다면

꽃노래 2016. 6. 12. 01:57

 

내가 지금까지 몇 번의 결혼식을 보았을까. 서른이 넘어서 다녀본 결혼식만 헤아려도 50번은 되지 않을까. 그간 보아온 모든 결혼식들이 모두 고귀하고, 소중하며, 저마다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두 말할 것 없지만 오늘 남형이의 결혼식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결혼식보다 인상깊었다. 누군가 내게 어떤 결혼식이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냐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늘의 결혼식을 떠올릴 것이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많은 이야길 나눠온 남형이. 그를 통해 들어온 그의 가족들은 마치 소설속 주인공처럼 내 기억속에 나만의 이미지로 간직되어 있었다. 오늘 소설로 읽던 작품을 영화로 보듯 남형이의 가족을 뵈었다. 축복이 가득한 식장에서 뵌 남형이의 아버지는 순박하셨고, 누나는 예뻤다. 세상을 함부로 살아선 가질 수 없는 미소를 보여주셨던 아버지. 남형이는 아버지의 아이같은 미소를 보며 삶을 배워왔구나. 어머니가 계셔야할 자리를 지킨 고운 누나와 순박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오늘 이자리의 듬직한 가장을 만들어 주셨다.

제주도로 엠티를 갔던 2008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형이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멀리 제주의 땅에서 새삼 고등학교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복받쳤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나는 남형이의 아픔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저 남형이의 눈물을 지켜보고 그의 아픔의 정도를 짐작해볼 뿐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일이 세상에는 수 없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큰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다. 그날 제주도의 횟집에서 눈물을 훔치는 남형이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야할지 몰라 어색해 하다가 그만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자리를 피해주어야 할것만 같아서. 그렇게라도 하면 남형이의 마음이 조금 편할까 싶었다. 방파제에 몰려드는 서귀포 앞바다는 철썩거리며 내 마음을 때렸다.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남형이는 또 얼마나 어머니 생각이 날까. 오는 사람사람마다 씩씩하게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는 남형이를 어딘가에서 보고 계실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에 대해 반감에 가까운 정서를 가진 남형이는 기독교이야길 할 때 특히 나와 죽이 잘 맞았다. 한국 특유의 기독교 문화를 손가락질 하면서 안주삼아 밤새도록 잘도 떠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형이도 나도 독실한 크리스찬을 아내로 맞이했고,  나는 결혼식날 목사님이 축도 기도를 해주시고, 남형이는 아예 예배식으로 결혼을 진행했다. 하늘아래 우연은 없다는 기독교 말씀 따라 이것이 다 하나님의 뜻인가.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고있는 '분당우리교회'는 강남과 여의도의 여느 대형교회들과 달랐다. 높이 솟은 권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본디 성경의 말씀과 같이 누구나 맞이하고자 낮은 곳에 위치한 교회 같았다. 남형이의 말을 빌면 좋은일도 많이 하고, 한국의 교회가 이정도만 돼도 다닐만 하지 않겠냐 한다. 신도가 늘어나 교회의 세가 커지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대형 교회는 그 부와 권력이 소수 지도자에게 집중되며 신도들 내면의 공포감과 기복적 기대감을 이용하여 교회를 키우고 운영한다. 그런 면에서 '분당우리교회'는 그저 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운영하는 것에 족하며 신도들의 정성을 모아 상대적으로 더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전하니 바로 성경의 말씀대로다.  신랑 신부가 나란히 서있는 단상 좌측에는 큰 글씨로 두줄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목사님의 제안으로 신랑 신부가 미리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고 했는데, 성혼선언 전에 신부의 편지만 직접 읽도록 했다.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들을법한 청아한 목소리로 신부가 읽어내려가는 편지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주례없는 결혼식도 몇번 보아온터라 부모님에게 미리 편지글을 써서 읽는 것이 내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편지글이 지금껏 들어본 어떤 편지보다 상투적이지 않고 겸허하며, 군더더기 없는 명문이었다. 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자리해주신 은사님 박교수님께 편지글 이야길 했더니 교수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교수님은 심지어 누군가 글을 좀 손봐준게 아니겠나하며 쉬이 인정하지 못하셨다. 나는 남형이의 작품이 아닐까요? 의심했다. 그만큼 글이 좋았다. 남형이가 신혼여행에 다녀와서 가능하다면 그 전문을 요청하여 이 블로그에 기록해 두고싶다.

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가기 전에 남형이에게 마침 전화가 왔길래 정말 신부가 쓴 글이 맞느냐 물었다. 온전히 혼자 쓴 편지글이 맞다 했다. 만난지 얼마 안되어 평생 서로의 배우자로 살기로 결심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감탄 했더니 남형이는 웃는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감동의 편지글을 읽고, 다음은 축가 순서이다. 축가로 밥벌이를 했던 나는 남의 결혼식만 가면 심사위원이 된다. 말은 하지 않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을 평가한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이 생긴 요즘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부의 하객이 그렇지 않을까. 

현악 3중주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익숙한 반주, 성악곡 '축복하노라' 였다. 카키색 원피스를 입고 무대한켠에 선 여리여리한 여성은 수백명의 청중을 압도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국민프로듀서를 순진한 관람객으로 만드는데에는 첫소절이면 충분했다. 테너가 부른 '축복하노라'만 들어온 나는 소프라노가 부르는 다른느낌의 축복하노라에 매료되었다. '나의 은총을 입은이여, 너를 아노라. 너의 이름을 내가 아노라' 로 시작되고, '내가 너를 축복하노라' 로 끝나는 이 곡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가 되었다. 좋은 노래에 좋은 목소리와 좋은 마음이 담겼다. 소프라노의 '열린 소리'는 듣기에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웠으며, 지나친 기교가 없어 듣기에 편안했다. 그러면서 곡의 흐름에 따라 명쾌한 해석을 담아 메세지를 정확히 전달했다. 신부의 감사편지에 화답하는 부모님의 말씀 같았고, 결혼식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 계곡물같은 목소리가 여름날 식장의 습한 공기를 갈랐다. 꼭 바다를 갈라야만 기적이 아니다. 

이어서 나온 다음 남자가수는 두곡을 불렀는데, 귀에 익은 곡이긴 했지만 나는 잘 몰랐다. 가수는 하객들을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함께 부르도록 했다. 약 300여명이 함께 부르는 축가는 피부를 뚫고 전율을 주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가장 섬세한 악기임과 동시에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수백명이 함께 맞춰 부르는 합창은 세상을 덮을 만큼 큰 에너지를 지닌다.  나를 제외한 모든 하객이 신랑과 신부를 둘러싸고 축복의 말을 전하는것 같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신랑과 신부를 향해 축가를 불러주는 광경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해도 좋다.  

소프라노가 노래부를 때 신랑 신부는 소프라노를 보았고, 남자가수가 노래를 부를 땐 남자가수를 보았다. 이제 하객이 모두 입을모아 노래를 부르니 신랑 신부는 서로를 보았다. 입가에 밈소를 머금으며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하는 이 두 사람은 오로지 열심히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 갚을 길이 없을 것이다.

 

식이 끝나고, 사진촬영에 대한 안내가 나왔다. 밖으로 나가서 강당앞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강당안에는 십자가와 꽃장식도 있고 천정도 높은게 웅장하니 사진찍기 괜찮을것 같았는데 굳이 밖으로 나간다니 의아했다. 밖이라고 해봐야 꽃밭이 있는것도 아니고, 학교 강당을 배경으로 야외결혼식의 느낌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 사진을 촬영할 때 둘러보니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특별한 건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자체가 교회의 겸허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미쳤다. 교회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고, 십자가도 없지만 소박한 예배당을 배경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새로 부부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아내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신부의 빠알간 부케가  밝은 햇살속을 날았고, 신랑신부의 키스가 끝나지 않도록 친구들은 열심히 박수를 쳤다.

 

진짜 성공적인 결혼식이 무엇일까. 오늘 그 답을 알게된 것 같다. 가슴이 뻐근하도록 차오르는 감사함. 그것을 느낄 수 있으면 최고의 결혼식이 아닐까. 하객도 이렇게 기분좋은 결혼식이 신랑과 신부 당사자에게는 얼만큼 더 큰 감사함으로 느껴질까.

 

신부가 입장할 때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신부와 신부의 아버지를 바라보던 남형이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 남형이가 교회에서 결혼을 하게 될 줄이야. 수영장에서 처음만나 결혼을 하게된 이 커플은 서로의 몸매에 먼저 반했을까. 뒷태가 유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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