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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일상

숙면전쟁

꽃노래 2016. 5. 14. 11:10

 

거실 소파에 웅크려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작다. 체구가 작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만큼은 그렇게 작아보일 수 없다. 할머니처럼 TV를 보다가 스르륵 잠드는 것도 아닌데 아내는 최근 이렇게 소파에서 잠드는 일이 잦아졌다.

 

잠귀가 밝은 나는 아주 작은 소리와 변화에도 쉬이 잠을 깬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방문이 모두 닫힌 상태로 안방에서 나지막이 나를 부르시기만 해도 벌떡 일어났다. 이웃집에서 조금이라고 큰 소리를 내도 잘 수 없었다. 이웃집에 아기가 있을 땐 내가 함께 키우는 느낌이 들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학교땐 내방 창문 앞에 붙어있는 옆집의 불이 켜지면 나도 일어났다.

며칠전에도 안방문을 10센티정도 열어두고 자고 있는데, 잠시 와계시는 할머니께서 새벽에 거실쪽 화장실 불켜는 것을 알았다. 문틈새로 스미는 작은 그 빛에 잠이 깬 것이다. 새벽에 잠이 깨신 할머니가 거실에 몇 번 나오셨는지도 다 안다. 마른 발바닥이 거실 바닥에 스치는 소리를 다 듣고 있다.

 

심지어 시간도 비슷하게 맞춘다. 한달전 쯤 새벽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난 아내에게 시간을 물었다. 3시반 이라고 했다. 4시반쯤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뜻밖의 소식이 반가워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다. 분명히 4시반 쯤 된것 같은데... 10여분 쯤 더 누워있다가 휴대폰을 들어 찡그리듯 시간을 보니 4시 50분이었다. 아내는 기상시간이 1시간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내가 더 잠 못이룰것을 알고 3시반 이라고 거짓을 말했다. 나도 아내가 깊은 뜻으로 시간을 달리 말한 것을 안다. 그점을 새삼 고맙게 생각하면서 조금 더 뒤척이다 곧 일어났다.

 

자다가 곧잘 깨곤하니 실질적으로 잠을 자는 시간이 주중엔 4시간 전후가 된다. 수면의 질도 낮거니와 실제로 잠이 부족한 탓에 아침에 일어나면 눈에 모래알이 들어간것 같다. 정신은 말짱해도 눈이 잘 떠지지도 않고 뜨고 있어도 눈알이 따갑다. 눈알을 꺼내어 깨끗한 물에 흔들어 씻어서 다시 넣으면 참 좋겠다. 그런 눈으로 하루종일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침침한게 잘 보이지도 않고, 정신까지 몽롱하다.  

 

 

이러한 와중에 문제가 된 것은 아내의 코고는 소리다. 크게 고는 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민한 탓에 잠이 깨고, 또 다시 쉽게 잠들기 어렵다. 잠들법 하면 다시 코고는 소리에 잠이 깨기를 반복한다. 얼굴을 돌려주거나 베개 위치를 고쳐 잠시 소리가 나지 않게 해두어도 자세가 바뀌면 다시 코를 곤다. 이제 곧 일어나야 할 시간인데 잠을 못자서 어쩌지 초조해 하다가 낡이 밝는다. 이직 후 3달여 이런일이 반복되다보니 나름 큰 고민이 아닐수 없다. 아내는 미안해하다 못해 우울해 한다. 이런 아내에게 화를 낸다고 될 일도 아니고, 아내는 따로 자자 하지만 더욱 안될 말이다.

 

한 번은 귀마개를 끼고 자 봤다. 큰 소리는 귀마개를 뚫고 들어올테지만, 아내가 코를 크게 고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효험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귀마개는 메모리폼 재질로 만들어진 3M 제품인데, 꾹꾹 구겨서 귀안에 넣으면 귀속을 꽉 채워준다. 귓속의 이물감으로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자면서 계속 깨는것 보다는 낫겠다 싶어 얼른 귀에 넣고 잠을 청했다. 결과는 대성공 이었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푹 잤다. 알람 소리도 못들었다. 지각이라는 것을 알고 귀마개를 집어 던졌다.

음악을 들어보자며 이어폰을 꽂고 잤던 날은 끔찍하게도 교수형을 당하는 꿈을 꾸었는데, 헐레벌떡 깨어보니 목에 이어폰줄이 칭칭 감겨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어폰은 다시 끼지 않는다.

 

 "정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고충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사람보다 고통을 고통으로 알지 못하게, 애초에 고통을 겪을 일이 없게 세심한 부분까지 사랑과 관심으로 손길이 닿아있는 사람 이다."

 

2008년 4월 학부시절, 연애상담으로 유명한 K교수님이 고민에 싸여있는 여학생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는 나대로 아내를 위해 잠을 못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내가 푹 잘 수 있도록 하려 애를 쓴다. 그러다가 이제는 내가 먼저 잠이 들면 슬며시 작은 방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내가 절대 따로 자지 않으려하니 나름대로 아내도 머리를 쓰는것이다.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아내가 내가 잠들때까지 기다렸다가 작은 방으로 건너간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다. 할머니가 와 계신 요즘은 벌써 두 번이나 소파에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보고 있다. 거실구석에 웅크린 아내를 보면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새벽에 슬그머니 나가는 것을 아주 모르는게 아니었는데 그걸 방치했다는 사실이 다음날 가슴을 콱 찌른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 예민하다. 어머니는 심하게 이를 가는 아버지 때문에 반평생 잠못이뤘다. 어릴적 나는 안방문과 작은방 문이 모두 닫힌 상태에서도 아버지 이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초등학교 땐 '열심히 일하신 만큼 울려퍼지는 아버지 이가는 소리' 라는 주제로 글을 써서 칭찬도 받았다. 그정도 소리를 어머닌 적응해 나가셨다. 옛날 그 좁은 단칸방에서는 어디 따로 잘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어머니가 하셨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의 코고는 소리는 아버지 이가는 소리에 비하면 자장가일 뿐이다.  

 

아내는 나를 위해 나가려하고, 나는 아내를 위해 붙잡으려 한다. 붙잡는 것이 나가는 것을 이겨야 한다. 아내는 내가 붙잡아주기 때문에 더 고마워서 나가서 자려고 한다고 했다. 한쪽에서 미안함을 느끼면, 한쪽에서는 측은함을 느낀다. 아내는 내게 미안해하고, 나는 아내가 측은했다. 또 아내는 나를 측은해 하고 나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미안함과 측은함은 모두 다 사랑이다. 숙면전쟁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다른 이름을 배운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정해져 있다. 참거나, 적응하거나. 참는 것은 괴로우니 적응해야 한다. 자면서 소릴 못들으려면 더 피곤해야 한다.

여전히 아직 잠에서 깨는 나는, 아직 덜 피곤한가보다. 운동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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