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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와 82년 개띠 본문

되짚어보는 일상

58년 개띠와 82년 개띠

꽃노래 2016. 5. 6. 15:51

'야! 말도마, 새학기만 되면 수입 렌트카가 동이나서 구하지도 못해'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모인 친목회 자리에서 친구 와이프가 던진 말이다. 초등학교 또는 유치원 입학식날 아이를 태우고, 혹은 데리러 가기 위해 렌트 수요가 증대돼 '수입차' 가 귀하신 몸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10~30만원에 이르는 수입차 렌트비용은 분명 대부분의 부모에겐 무리한 지출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렌트가 아닌 '구매' 를 했겠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보여지기 위해' 무리한 지출을 하게 만든것일까.

 

 

 

유별난 편가르기, 근묵자흙 (近墨者흙)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부모들의 걱정은 예나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최근의 행태를 보면 현 시점에서 아이들의 편가르기는 정점을 찍고 있는것 같다. 이제 막 유치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너희집은 몇 평이다' 를 기준으로 편을 갈라 어울리고 또는 놀려대기까지 하는 상황은 이제 낯설지 않다.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아파트 평수로 기준을 정하고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쁜친구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부모의 타이름이 어쩌다 '흙수저를 가까이 하지마라' 가 되었을까. 부모의 교육속에서 길러진 것이 분명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과연 어디부터 비롯된 것일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환경과 배경을 알아야 한다. 문학 작품을 접할 때 작가의 배경에 따라 작품의 해석이 극도로 달라지는 것과 같다. 현재 2~8세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은 내 또래인 82년생 전후로, 그들은 다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다. 유별난 편가르기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이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한다. 나는 원인이 그곳에 있다고 본다.

 

 

58년 개띠와 82년 개띠

 

53년 한국전쟁 이후 55년부터 65년까지 해마다 80만명씩 아이가 태어났다. 2015년 43만명이 태어난 것의 2배 가까운 수치이며, 그 중 58년은 그 정점에 달한 해로 110만명이 태어났다. 58년 개띠가 유명한 이유다. 이 '58년 개띠'를 낳은 세대는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중 하나는 생존, 굶어죽지 않는 것 이었다. 교육은 극히 일부 소수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사치였고, 그나마 글만 깨우쳐도 다행이었다. 65세 이상 노인의 문맹률이 50%에 달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나마 한글이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전쟁 후 폐허가 된 나라를 '잘살아보자' 는 일념으로 매진한 덕에 대한민국은 양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나라는 분명 이전보다 잘 살게 된것 같지만, 어딘가 근본적으로 불공평한 세상이 되어간다는 것을 더욱 체감하기 시작했다. 불공평함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교육' 뿐이라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그들은 자녀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전한다. 밥은 굶더라도 학교는 보내고자 했다. 먹고사느라 '못배운 것이 한'이 되어버린 한국전쟁 세대가 자녀에게 물려준 것은 '배움' 에 대한 갈증이었다.

 

'58년 개띠'는 말도 떼기 전에 4.19를 겪고, 이후 5.16, 10.26, 5.18, 6.10 등 격변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부모의 한맺힌 교육열과 산업화를 등에 업고 각지에서 서울로 서울로 모여 터전을 마련해 나갔다. 크고 작은 민주화 운동에 직접 몸을 담았든 아니든 대한민국을 뒤덮은 물결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일 수록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민주화 운동에 먼저 몸을 던진 사람은 농민이나 직장인이 아닌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라는 점이 이를 설명한다. 당시 대중을 지배한 이데올로기는 '정의' 또는 '보다 나은' 세상을 표방하는 '민주화' 였지만 놀라운 집결력으로 똘똘뭉친 기득권의 벽을 허물기는 쉽지 않았다. 정치는 재벌과 결탁하였고 언론을 장악하였으며, 번번히 한계를 체감한 야당은 반복적으로 분열을 겪었다. 이 과정을 수 십년간 겪어온 그들앞에 놓인 결과는 '기회주의' 의 승리였다. 결국 사회 정의실현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내가 기득권이 되겠다' 는 기회주의를 근간으로 긍정적 발전의 동력이 약화되었다.  '386세대의 변질' 이라며 초심을 잃은 민주화 세대를 질타하는 기사들이 많이 쏟아지는 것으로 보아 민주화를 이끌었던 적지않은 '58년생'이 기회주의적 사관을 바탕으로 스스로 합리화 하여 기득권에 합류하고자 했다.

 

'82년 개띠'는 이러한 부모의 좌절을 보며 자랐다. 부정한 방법이라 하더라도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을 잘한 사람들이 결국 더 풍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부모가 '이것은 잘못된 것이니 너는 바르게 살아라' 라고 교육 했다고 하더라도 직접 보고 겪은 사회의 모순 속에서 82년 개띠가 얼마나 수긍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매일같이 뉴스를 보며 한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기대감은 낮아졌다. 통신의 발달은 이 의식에 기름을 붓는다. 내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세계의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생생히 보며 자랄 수 있었다. 당장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서 벗어나면 주변을 돌아보게 마련이다. 부모세대의 노력과 희생으로 다행히 굶어죽는 걱정을 어느정도 덜고보니 이제 주변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심이 갔을 것이고, 그들과 다른 내 자신을 인식하면서 자존감이 위축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위축된 자존감은 열등감이 되며, 열등감은 공격성을 지닌다.

 

관심은 내가 어떻게든 저 반열에 들어가느냐 못들어가느냐에 집중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취득하기 위한 적자생존의 환경에서는 나 이외의 사람은 모두 적이 되고 만다. 입시와 취업, 맹목적인 경쟁속에서 그들의 가치관은 또다른 '생존' 으로 일괄되었다. 상위권 대학을 나온 사람이 대기업에 취직할 확률이 높았고, 상위권 대학의 진학률은 부모의 소득과 직결되었다. 부모의 소득에 의해 아이들이 받는 대우는 달랐고, 자연스럽게 그룹이 나뉘었다. 학력과 상관없이 성공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로 너무나 먼 얘기였고, 그들의 성공담 조차 '무언가 있었겠지' 라는 피해의식으로 희석했다. 무리하게 '수입차' 를 렌트해야 하고,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와는 어울리지 마라' 라고 말하는 '82년 개띠' 엄마는, 결국 사회 구조가 만든 '진짜 피해자' 다.

 

 

피해자의 가짜 우월감

 

주요 기업이 대부분 강남과 여의도 등지에 모여있는 것을 고려하면 김포에 거주중인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시내의 높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부담스러운 출퇴근 거리를 감안하더라도 치솟는 전세값에 고민하느니 조금 더 교외로 나오더라도 속편히 내집을 마련하자는 심산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노인을 찾아보기 힘든 김포 한강 신도시에는 바로 그 82년 개띠들이 주를 이뤄 터전을 삼고 있다.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에게 패배한 아버지의 좌절을 보고 자랐고, 기득권이 마련해 놓은 한정된 먹거리를 나눠 갖기 위해 그들끼리 싸워 이겨야만 했다. 그것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고 이제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편을 가르므로서 그들이 느끼고 싶어하는 감정은 '열등감에서 기인한 근시안적 승리감'이다. 이 작은 김포 안에서 편을 나눠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자라면서 느껴왔던 뭔지모를 열등감이 아이에게도 생길까봐 두려워서 가짜 우월감을 조장한다. '보아라, 엄마는 우월한 집단에 속해 있으며, 너도 앞으로 이런 집단에 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비참하지만 흉내를 내고 싶은것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믿는 작은 것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최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연히 지속가능할 수 없다. 초등학생 끼리 주거 형태별로, 평형별로 나뉜 그룹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부모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준 가짜 기준은 아이들의 자아가 생성되면서 깨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은 자기와 맞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아이에게 좋은 친구는 24평과 34평이 구분해주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우월하다고 믿었던 아이들의 기준이 깨어지면서 자신의 현 위치를 알게 되었을 때 느낄 자괴감. 그리고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과 어울리면 안된다고 배워온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이다. 김포를 예로 들었지만, 이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부모의 역할

 

며칠전 차 안에서 아내가 넌지시 물었다.

 

"오빠,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할 텐데, 나중에 자식에게 가르칠 지식을 내가 갖추고 있지 못하면 어떻하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격이지만, 아내의 걱정은 그럴법했다. 아는 선배는 5살 짜리 딸이 아빠한테와서 '아빠, 낙타가 영어로 뭐야?' 묻길래 '카멜이지~' 라고 대답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어? 알고 있네~'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부모를 시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아이가 제시하는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아이로부터 무시당하는것이 두려운 시대가 되었다. 물론, 아내의 걱정은 아이와의 지식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헤쳐갈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할 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아내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온라인에서 상품을 팔고, 온라인 마케팅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이런것들을 미리 알고 부모님이 알려줄 수 있겠어. 우리가 알려줄 수 있는건 보다 근본적인 부분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배운것 처럼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게 올바른 가치관인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가야하는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은 인생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면 세상이 더 풍요로울 수 있는지. 그런것들 말이야. 당신이 잘하는 것 있잖아. 들어주고 이야기 하는 것. 난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 

 

 

사람이 살면서 근본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거창하게 정의로운 사회 운운하지 않더라도 분명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이는 아파트 평수가 결정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삶을 이해하는 것이 결국 밥벌이와 직결되었음은 물론, 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있다. 82년생 개띠는 바야흐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세대다. 복지국가로의 출발점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고, 지구가 하나의 로컬이 되어 세계관이 바뀌었다.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82년 개띠 엄마들이 적어도 자신의 열등감을 회복하기 위해 아이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자식의 길에 꽃을 뿌려주고 싶은 거라면,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일은 수입차를 렌트하고 아이의 친구들을 평형으로 구분하는 일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아이 스스로가 던질 수 있도록 따뜻하게 안아주고 아이의 눈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그게 진짜 아이를 위하고 아이가 원하는 일 아니겠나.

 

어제는 어린이 날이었다. 김포몰에는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미소에는 우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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