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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ong
가득 불러져 오는 아내의 배를 보면서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에 고심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그 삶을 관장한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이름을 정하기 위해 매우 오랜 시간을 고심한다. 심지어 작품을 다 만들어 놓고도 그 이름을 확정짓지 못해 출판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소설속 가상의 인물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내가 낳고 기를 자식의 이름이야. '사주팔자' 라는 토속적 신앙에 의거해 태어나는 일시에 따라 타고난 기운이 정해지고, 그 기운을 보완하고 다듬는 의미의 글자(한자)를 이름에 담아 작명하는 오랜 관습은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 무렵 무시할 수도 따를 수도 없는 어려운 난관이 된다. 처가쪽은 기독교를 믿고 본가쪽은 불교를 믿어 이름에 종교적인 내용을 반영할 수는 없다. 아내도 굳이 성..
11월에 접어든 포천의 새벽 공기는 벌써 매섭다. 아내를 따라 모처럼 아침일찍 교회에 나선 나는 왜이렇게 교회 안이 춥나 몸을 움츠리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예배가 시작되고도 한참동안 몸을 비벼대다가 예배단 앞에 가지런히 놓인 낡은 구두 한켤레에 눈이 멎었다. 목사님의 발은 얇은 양말 하나에 의지해 추위에 맞서고 있었다. 오늘보다 더 추운 한겨울 혹한에도 칠순을 맞은 목사님은 저렇게 신발을 벗고 서 있었을 것이다. 오늘 처음 알았다. 신발 안에 들어있는 내 발가락은 추워 계속 꼼지락거린다. 올해로 개회 58주년을 맞은 교회는 수도자의 초심을 잃지 않은 목회자의 의지를 따라 지금껏 걸어왔다. 몇년 전 장성한 아들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다음 날에도, 목사님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뜻이라' 는 ..
얘, 이 촛불좀 봐라. 불에 꽃이 피었다. 어느 작은 절에 '기도' 를 한다며 돈과 정성을 들이던 어머니는 촛불 사진 하나를 보여주며 거듭 감탄했다. 일반적인 촛불은 심지위에 가만히 올라앉아 촛불 고유의 제 모양과 빛깔을 유지하는데, 사진속 불꽃은 정말 꽃이 핀듯, 불이 붙기 시작하는 성냥의 머리처럼 빛이 사방으로 뻗치며 겉은 밝은 노랑에 안쪽은 푸른 색으로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신도들은 각자 가족의 안녕을 빌며 초에 붙을 붙여놓고 기도를 드리며 그 불꽃을 살피는데, 공고롭게도 아내의 임신소식 즈음해서 촛불이 특별히 타올라, 어머니는 보기드문 경사라며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는 기쁜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현상은 초의 심지 기름이 유난히 뭉쳐있는 부분이 일시적으로 강하게 타들어가며 발생하는 것이 분명..
어머니는 아내의 두 손을 맞잡고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아내를 와락 끌어 안고는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맙다.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 그동안 맘고생 많았지. 정말 고맙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내의 임신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한참을 서서 아내를 끌어안고 우셨다. 결혼한지 햇수로 7년. 짧지 않은 시간 기다려왔던 간절함의 결실. 남몰래 힘들어했을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닦아냈다.
'빨리 땅속에 들어가야 끝날 일인데 목숨만 길어지니 환장할 노릇이지' 할머니는 또 살아있음을 원망한다. 한줌 모래알로 흩어질 것 같은 나날들을 보내는 할머니에게 늘어난 기대수명은 죽음보다 무거웠다. 3남1녀를 슬하에 두었건만 벌써 두 아들을 먼저 보낸 할머니의 세월은 그저 뒤를 돌아보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남은 자식들이 서운할까 죽은 아들을 다시 입에 담지 않는다. 그저 묻은 가슴으로 삼킬 뿐이다. 할머니는 가끔 먼곳을 보며 홀로 우셨다. '이번에 나좀 너네 집에 가 있으면 안되겠냐. 고모집에만 있으려니 고모도 나도 서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할머니는 조심스레 운을 뗀다. 금이야 옥이야 얼르고 내손으로 기른 손자가 할머니는 어쩐지 점점 어렵다. 자식들의 수고로움이 우려스러워 한 집에 오래 머무르길 조심..
시간에 대한 인간의 욕망 두가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맘, 미래를 내다보고 싶은 맘. 오늘에 존재하지만 어제와 내일에 매여 오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DNA에 새겨진 동물적 습성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꿈을 통해 미래를 예견한다는 예지몽. 바라는 것이 많을 때에, 꿈에 의존해 어떤 일들을 기대했다. 일어난 일들을 꿈에 맞춰 그 신통함에 머리를 조아렸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개꿈이라며 합리화 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게 된 어느날, 너무도 정교한 실험과 정연한 기록에 나는 환상을 좇아내고 실물을 접한다. 꿈은 일상의 기억이 조합되어 무의식 속에서 다시 표출되는 각성 현상. 미래를 보는 눈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상식과도 같았던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닌데, 왜 그전에는 무시했는가...
컨텐츠는 '감동' 을 주거나 '재미' 를 주거나 둘중 하나다. 사회적으로 문화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질 수록 컨텐츠는 더이상 '놀거리'에만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범위가 확장된다.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보편화 되고 있는 총체적 자원이 곧 컨텐츠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컨텐츠는 곧 자산이자 자본이다. 즉,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하는 자가 자산가이자 자본가가 된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주체가 부를 누린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모처럼의 금요일밤을 맞아 아내와 나란히 거실 스피커 앞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아내가 추천해준 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 4악장이다. 곡의 중간중간 2악장의 주제멜로디가 첼로 선율로 연주된다. 첼로를 받쳐주는 피아노 연주가 지날 때 스피커..
1970년대 문학을 두고 시(詩)는 김지하의 '오적' 부터, 소설은 황석영의 '객지' 부터 라는 말이 있다. 시대를 통찰하는 대표적 문학작품으로 대단한 찬사를 받는 셈이다. 오랫동안 벼르다 '객지' 를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객지'는 남한 사회가 대규로 산업화에 돌입한 이후 최초로 노동자 쟁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고, 열악한 노동현장의 착취를 노동자의 시각으로 밀도높게 구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객지의 작품발표를 기점으로 전개된 노동운동과 노동 문학에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근 촛불혁명으로까지 불리우는 국민들의 결집과 불의에 대한 항거는 특정 사건을 계기로 도화선이 되기도 했지만, 지속적 계몽의 결과다. 이 계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 영화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