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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ong
주림과 포만의 중간쯤, 그래도 조금은 주림 쪽에 더 가까운 약간의 시장기. 포만감의 굴레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 본 사람은 그 날아갈듯한 가벼움을 함부로 놓지 못한다. 물 한모금을 목구멍에 밀어넘기면 울떡거리는 목젖을 너머 식도를 지나 위장으로 스륵 내리는 물의 길이 고스란히 느껴질만큼의 공복. 비로소 그 상태일 때 사람은 가장 총명해지는 것 같다. 한 젓가락, 한 숟가락의 밥을 붙들다 그만 턱밑까지 채워져버린 식탐은 눈빛을 흐리게하고 몸을 무르게 한다. 숨쉬기도 버거워 뒤로 몸이 절로 젖혀질 만큼 채워넣고는 지금 또 후회한다. 거북스런 속과 미련스러운 그 모습일 알면서도 왜인지 매번 끼니때마다 반복되는 이 모습은 내가 몸의 주인이 아리나는 증거. 소박하고 이른 상으로 하루 마지막 끼니를 거두고 손에 잡히..
마지막 축가 결혼을 앞둔 동욱이의 축가 부탁에 마음이 무거웠다. 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 '제네시스' 에서 함께 활동하며 호흡을 맞춰온 동욱이는 그시절 낭낭했던 내 목소리만을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서울시 동아리 한마당'을 비롯해, 고등학교 3년 내내 크고작은 대회의 상을 휩쓸었던 당시의 우리는 모두 평생 음악을 하며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제네시스 활동은 내게 단순히 학창시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당시 평탄치 않았던 환경 하에서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성장하는데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영향을 미쳤다. 연습실에서 흘린 땀, 함께 울고웃던 동기와 선후배들, 무대위에서 듣던 함성,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던 허무함과 아쉬움. 이 모든것들이 나를 가르..
군 입대 날자를 두 달 여 앞두고 아르바이트로 선택한 일은 모교 고등학교의 급식 알바였다. 후배들에게 밥을 해 먹인다는 즐거움까지는 없었지만 존경했던 선생님들을 자주 뵙고 추억 어린 교실과 복도를 거닐며, 평균보다 높은 시급에 남은 반찬을 싸가지고 집에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였다. 할머니와 생활해던 당시 그날그날 남은 급식반찬을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가는 날은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 몹시도 더웠던 5월, 어버이날이 지나고 스승의 날이 가까워질 무렵. 땀을 뻘뻘 흘리며 식차를 들어 나르던 어느날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반갑고 정중히 인사하던 내게 대뜸 말했다. '고광팔이, 내 너 이렇게 살줄 알았어~' 이름의 끝자를 늘 '팔' 자로 바꿔서 부르던 경상도 억양이 짙은 그의..
이른 아침, 아라시야마를 찾아가다가 버스에서 잘 못 내린 역주변은, 초조한 내 맘과 달리 한산했다.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한 무리의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영어를 알아들을 것 같아 다가가 길을 물었다. 내가 일본어를 못 하니 자연 영어로 물을 수밖에. 말을 걸자마자 청년들은 한사코 손을 흔들어대며 '노잉글리시' 라고 외쳐댔다. 마치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듯 황급한 몸짓과 목소리로. 청년은 모두 8명. 여자 1명에 남자가 7명이었는데, 8명의 청년이 모두 영어를 못한다고 격하게 손사레를 쳤다. 이색적인 광경이다. 청년들을 등지고 다시 길을 찾기 위해 역 주변을 서성이는데, 잠시 후 무리속에 있던 한 여자가 머뭇거리며 다가오더니 '스미마셍' , 나를 부르고는 한 외국인을 내 앞에 데려다 놓았다. 이번엔..
'호수공원이라면 일산호수공원이나 광교호수공원쯤 되어야지, 김포호수공원은 너무 작은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김포호수공원을 내달리다 금새 출발점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내는 푸념했다. 일산호수공원은 30만㎡로 인공으로 조성된 호수공원으로는 아시아 최대규모이고, 광교호수공원은 원래 유원지로 유명했던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일대를 삼성물산에서 7200억원을 들여 조성한 것으로 일산호수공원의 1.7배 규모에 달한다. 김포호수공원은 10만㎡로 일산호수공원의 1/3 크기이다. 처음 김포호수공원의 면적을 알고는 의아했다. 일산 호수공원의 1/3 크기나 된다고? 체감했던 면적은 더 작았기 때문이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몇가지 요인이 있었다. 김포 호수공원은 항상 자전거를 타고 돌았고, 일산호수공원과 달리 돗자리..
중학교시절 교과서를 통해 처음 본 목조미륵반가상은 국내 예술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였다. 예술품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논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술이 미개한 일본에 전해져 그들을 계몽했다는 문화우월주의의 산물이었다. 적어도 당시 내가 받아 들이긴 그랬다. 역사교육의 목적이 그랬고 그 시절의 교육이 그러했다. 이번 일본여행은 목조미륵반가상에 가장 큰 기대가 걸려있었다. 서수적 의미와는 무관하지만 일본의 국보1호라는 사실과 5년 전 경주에서의 충격이 가장 큰 이유이다. 교과서를 통해 보았던 말간 얼굴에 그 알듯 모를듯한 표정의 목조미륵은 중학교시절 이후 거의 완전히 내 기억속에서 사라져있었다. 그런데 2011년 8월 토함산 깊은 기슭에 평온하게 자리잡은 석굴암을 보자마자 충격과 함께 떠오른 것이 ..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인도로 여행을 떠나며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것'을 걱정했지만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벌레 떼의 습격에 하루도 못버티고 육지로 돌아오는 배를 탔다. 여행은 늘 변수를 동반한다. 변수는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변수를 통해 각인되는 각각의 기억은 온전히 그 여행자의 것으로 각기 다른 표정을 남긴다. 그게 여행의 진짜 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카찬차키스는 여행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몸으로 겪은 수많은 즐거움이나 쓰라림 중에서 관념적이고 수정처럼 맑은 생각들만 상기한다면 얼마나 많이 허기를 느낄 것인가. 어느 나라를 다시 맛보려고 눈을 감을라치면 나의 오감이, 아니 내 몸에서 뻗쳐 나간 다섯 촉수들이 ..
3년만에 다시 오사카를 찾은 날은 다름 아닌 광복절이었다. 8월15일을 중심에 두고 2박3일간 일정을 짜면서 주변사람들의 걱정을 들었다. '그래도 광복절인데 일본에 가는게 좀 그렇지 않아?'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국내에서 판판 노는 것보다, 오히려 일본에 머무므로서 '오늘이 광복절이다, 순국 선열을 잊지말자' 되새기는 것이 더 애국적이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도 망해가는 조선땅에 앉아 죽는날만 기다리느니 창시개명을 하고 일본에서 시를 쓰고 펜으로 독립의 초석을 닦는 길을 택했다. 감히 비교할 순 없지만, 같은 맥락이라 싶었다. 아내가 합창단 행사로 일주일간 해외 일정이 잡혔다. 하릴없이 혼자 집에 있느니 나도 어딘갈 좀 다녀와야겠다 싶어 고른 곳이 일본 오사카다. 비교적 저렴한 비행기 삯과 마침 읽고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