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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일상

폭풍우와 금각사

꽃노래 2016. 8. 21. 11:28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인도로 여행을 떠나며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것'을 걱정했지만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벌레 떼의 습격에 하루도 못버티고 육지로 돌아오는 배를 탔다. 여행은 늘 변수를 동반한다. 변수는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변수를 통해 각인되는 각각의 기억은 온전히 그 여행자의 것으로 각기 다른 표정을 남긴다. 그게 여행의 진짜 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카찬차키스는 여행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몸으로 겪은 수많은 즐거움이나 쓰라림 중에서 관념적이고 수정처럼 맑은 생각들만 상기한다면 얼마나 많이 허기를 느낄 것인가. 어느 나라를 다시 맛보려고 눈을 감을라치면 나의 오감이, 아니 내 몸에서 뻗쳐 나간 다섯 촉수들이 요란을 떨며 그 나라를 덮쳐서 내게로 끌고온다.'

여행의 목적은 늘 같은 일상에서의 탈피이자 변화를 통한 충전이다. 예상 가능한 일정들은 탈피와 충전의 계기가 되기 어렵다. 이미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이면 내가 가고자 하는 여행지의 모든 정보를 알아낼 수 있기에 이젠 더이상 단순히 무언가를 '보기' 위한 '관광'의 시대가 아니다. 변수가 더 소중해진 이유다.


금빛 찬란한 3층 누각이 고요한 호수에 비치는 장관을 그리며 찾은 교토의 북쪽 킨카쿠지. 3년전 교토를 방문했을 때엔 시간에 쫓겨 금각사를 들르지 못해 다음을 기약했다. 일본에 한번 넘어오는 것이 직장인이자 유부남인 내게는 쉽지 않은 일 이었다. 이제 3년만에 다시 오사카를 찾아 금각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설레임 그 자체다.

점심도 황급히 먹고 금각사로 향하는 길에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는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다. 거친 바람을 동반한 폭우는 폭력과도 같았다. 빗줄기는 세로가 아닌 가로로 날렸고 우산은 무력했다. 후배 성민이는 속도 모르고 군복무시절 알몸으로 비를 맞았던 경험을 신이나서 떠들었다. 저렇게 내리는 비를 알몸으로 맞으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행여 카메라와 렌즈가 젖을까 노심초사하며 어느 음식점 처마밑 깊숙한 곳에 서서 카메라를 감싸쥐고 망연하게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 도무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다.

이십 여분을 그렇게 서 있노라니 금각사 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우산이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홀딱 젖어서 나오고, 우산이 있는 사람도 거의 헤어스타일만 보존하다시피 무의미하게 우산을 들고 있었다. 십 여명 무리의 여고생들이 눈앞에서 전력질주를 했다. 휘날리는 교복치마를 틀어쥐고 꺄르르 웃어대며 달리는 순수함에 감탄하다가 원피스가 홀딱 젖어 섹시한 자태를 뽐내는 여인에게 더 오래 눈길을 빼앗겼다.

애초에 문화재에 관심이 없고 작은 슬리퍼를 신고 온 탓에 발의 통증을 호소했던 성민이는 숙소로 돌아갈 것을 거듭 권했다. 카메라도 문제고, 폭우가 도무지 잦아들것 같지 않다는 이유였다. 고지가 코앞인데.. 정상을 눈앞에 두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하는 등반대장의 고뇌를 실감했다. 다른 사람을 책임져야하는 대장의 역할과 두번이나 찾아온 금각사를 눈앞에 두고 그냥 돌아갈 수 없는 개인적 욕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잠시 고민했다.

'정 힘들면 넌 숙소로 돌아가라. 어쨋든 나는 금각사를 보고 갈테다.'

나의 결정이었다. 우선 카메라를 처리해야했다. 이 빗속에 들고다닐수는 없었다. 방금 점심을 먹었던 식당의 예쁘고 상냥했던 직원이 떠올랐다. 왠지 그 식당의 여직원이라면 나의 카메라를 소중히 맡아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뻔뻔한 믿음이 생겼다.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우월감을 바탕으로 빚어낸 오리엔탈리즘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지만, 어쩐지 일본 여성들로부터 느껴지는 보호본능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부담스러우리만치 친절한 태도와 환하게 웃는 표정은 오히려 행복해서라기보다 행복을 갈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저자세로 상대방에게 은의를 입혀 빚진 듯한 느낌을 주는게 일본인들의 문화이자 관습이라고 하지만, 그런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일본 여성들의 무엇인가 억눌려보이는 느낌은 고스란히 안쓰러움이 되었다. 내가 구원해 줄 수 있을 것만같은, 도와주어야 할 것같은 책임감을 일으키는 친절함. 김정운 교수는 이를 '도덕적 마조히즘' 이라 했다.

 

영어가 유창했던 여직원은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예쁘게 웃으며 흔쾌히 3대의 카메라를 맡아 주었다. 대단한 민폐가 되겠지만 그만큼 금각사를 향한 나의 의지는 강했다. 금각사의 관람 종료 시간 까지 한시간이 주어진 우린 자유로워진 양손으로 우산을 기꺼이 받쳐들고 서둘러 금각사로 향했다. 금각사 진입로 곳곳에 설치된 천막과 관문의 처마밑에 사람들이 비를 피해 밀집해 있었다. 무의미하게 들고 있는 우산속 인파를 뚫고 표를 구해 나오니 얼굴까지 빗물에 젖었다. 안경에 묻은 물기는 시야를 방해했다. 여행 둘째날인 오늘 샌들을 신고 등산복을 입고 나온 것이 그나마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하며 빗줄기는 세차게 내리다가 약해지다가를 반복했다.

아수라장 진입로를 지나 팻말을 따라 우측으로 꺾어들어가는 길목을 돌자, 거짓말처럼 금각사가 나타났다. 몰아치는 폭우속에 우뚝 서있는 금빛 누각은 고난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왕족의 느낌이었다. 그간 사진을 통해 보아온 고요한 호수위의 보물 같은 이미지와는 분명 다른 표정의 금각사였다. 일년에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 중 이런 폭우속의 금각사를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희소성이 가져다주는 가치는 희열이었다.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담아보려 했지만, 내 팔에 무수히 떨어지는 빗물과, 바람, 그리고 금각사의 아우성은 사진에 온전히 담기지 않았다. 눈으로 담고 가슴으로 찍어야만 했다.

사람이 많았더라면 조금씩 떠밀려서 급히 돌아 나갔을 지천회유식 정원을 유유히 돌아 금각사의 뒤쪽을 갔을 때, 하늘이 급히 개이고 햇빛이 돋았다. 빗방울은 아직 조금 씩 떨어지고 있었지만 하늘의 냄새를 안고 내려왔다. 금각사 처마 꼭대기에 올라 앉은 황금빛 봉황의 꼬리 언저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정면에서 몰라보았던 위압감이 뒤쪽에 서려 있었다. 금빛 봉황의 시선이 저 멀리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시선은 감정을 동반한다. 문득 수 백년 동안 저 처마 꼭대기에서 황금 날개를 펼쳐들고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금각사를 마주하기 전, 금각사의 매력은 화려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각사는 외로웠다. 더 짙은 화장으로 외로움을 감추려 하는 뭇 여인의 심리처럼, 쇼군이라 불리운 어느 권력자의 외로운 갈증이 금각사에 묻어났다. 어쩌면 폭우속에서 보았기에 그러한 모습을 느꼈는지도모를 일이다. 권력은 짧았지만 그 외로움의 여운은 길었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그것을 알기에 금각사의 꼭대기에 봉황을 얹어놓았는지도. 여행의 변수는, 늘 많은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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