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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호수공원에서 료안지(龍安寺)를 떠올리다. 본문

되짚어보는 일상

김포호수공원에서 료안지(龍安寺)를 떠올리다.

꽃노래 2016. 9. 4. 13:20

 

'호수공원이라면 일산호수공원이나 광교호수공원쯤 되어야지, 김포호수공원은 너무 작은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김포호수공원을 내달리다 금새 출발점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내는 푸념했다. 일산호수공원은 30만㎡로 인공으로 조성된 호수공원으로는 아시아 최대규모이고, 광교호수공원은 원래 유원지로 유명했던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일대를 삼성물산에서 7200억원을 들여 조성한 것으로 일산호수공원의 1.7배 규모에 달한다. 김포호수공원은 10만㎡로 일산호수공원의 1/3 크기이다. 

처음 김포호수공원의 면적을 알고는 의아했다. 일산 호수공원의 1/3 크기나 된다고? 체감했던 면적은 더 작았기 때문이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몇가지 요인이 있었다. 김포 호수공원은 항상 자전거를 타고 돌았고, 일산호수공원과 달리 돗자리를 펴고 머물며 피크닉을 즐긴 적이 없으며, 무언가 기억에 남는 시설물이나 문화적 이미지, 즉 콘텐츠가 없었다. 결국 아파트 숲 가운데 커다란 웅덩이만 덩그러니 놓인 산책로 만으로는 '심리적 규모감' 과 '김포호수공원' 이라는 이미지가 포지셔닝 될 수 없었다.

 

일본의 료안지(龍安寺)에는 '석정' 이라 불리우는 가레산스이식(돌과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의 면적이라봐야 200㎡ 남짓 될까,  그 작은 정원을 보기위해 매년 수 십 만명의 관광객이 료안지를 찾는다. 세계 최고의 의전시스템을 자랑하는 영국의 왕실에서 1975년 치밀한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마치고 엘리자베스여왕이 단 한 곳 다녀간 데가 바로 이 료안지였다. 물 한방울 없는 그 정원을 보기 위해 전세계의 사람들이 열광하며 바삐 다녀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1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에 부족한 정신적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부지런히 세계에 zen 사상을 알린 일본의 학자들의 역량이 컸다. 젠(zen)이라 불리우는 선불교는 일찌기 인도를 바탕을 중국에서 탄생한 것인데, 마치 일본문화의 상징인 듯 알린 그들의 역량은 손가락질만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안일했다. 여백의 미는 동양에서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이지만, 실리를 추구하는 서양의 입장에서 '비어있다(空)' 는 것은 곧 '부실하다' 는 의미이므로 예술의 한 측면이 될 수 없었다. 다시말해 처음 서양사람들의 눈에 비친 여백의 미를 극도로 단순화하여 형상화한 료안지의 석정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아는게 적은만큼 보이는것도 적었던 탓인지, 료안지의 석정은 내게 그리 큰 감흥을 불러오지 못했다. 오히려 간결하게 놓인 자갈과 바위를 보니 생각나는 시화(詩畵) 한폭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이다.

제주에서 햇수로 9년의 유배생활을 해야했던 추사 김정희는 변치않고 안불를 묻고 귀한 책을 구해다주는 제자 이상적의 마음에 감동해 '세한도' 를 그려준다. 아무것도 없는 유배공간에서 근 10년간 오로지 학문과 글씨를 쓰는데에만 온 공력을 기울였던 추사가 말년에 완성한 감각의 깊이는 그의 작품에 여지없이 드러난다.

‘엄동설한이 된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름을 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라는 공자의 명언을 주제로 담은 한폭의 글씨와 그림은 비어있는 공간조차 추사의 의도가 가득 담겨있다. 한폭의 화선지에 공기와 바람까지 담은 초감각적 심상이다. 비어있지만, 화폭의 어느한쪽 구석도 추사의 예리한 눈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획이 만획이고, 만획이 일획이다.  

 

▲ [세한도]  김정희(金正喜, 1786~1856), 1844년, 종이에 수묵, 27.2×69.2㎝, 국보 제180호, 개인 소장

 

 

료안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실험주의 음악가 존케이지는 4분33초라는 곡으로 료안지를 담았다. 공연장에 청중을 모아놓고 4분33초동안 멀뚱하게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대신한 유명한 일화이다.  '누구라도 그런짓은 할 수 있다' 며 당시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따가운 비난을 받았지만, 완벽하게 비움은 완벽하게 채울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적절한 예가 될 지 모르겠으나, 객관식 시험에서 0점 받는 일이 어려운 것과 같다. 단단히 맘을 먹고 찍어도 어느하나는 맞게 마련이다. 답을 모두 썼는데 완벽하게 0점이 되려면, 알고 피해가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사실은 대단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게 아닐까.

 

료안지는 절 자체만으로 본다면 일본의 많은 사찰 중 하나일 뿐이다. 오로지 석정(zen garden)이 그 료안지를 세계속의 료안지로 안착시켰다. 석정은 30만 제곱미터의 면적도, 7200억원의 조성비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역사와 시간,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적 스토리가 돌정원이라는 조형물로 형상화 되어있을 뿐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 급히 물을 끌어다 담아놓고 산책로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진짜 명소가 되기 어렵다. 작은 국토의 면적 안에 조성 가능한 공간은 분명 한정되어있고, '최대규모' 만을 기준으로 서로 경쟁하듯 만들어내는 공원들은 한계에 닿기 마련이다. 조금 작은 공간이라도 그 속에 인문학을 담고, 문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깊이를 더한다면, 어느공원이 되었든 그 넓기가 일산 호수공원에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릴 수 있도록 만드는것도 중요하지만, 공간이 아닌 시간을 산책로에 끌어다 4차원의 공원으로 만든다면 그 깊이가 같을까. 한걸음 내디딜때마다 보폭만큼 공간이 아닌 시간을 이동하도록 만들어진 공원이 될 수만 있다면 100만평의 호수공원인들 그 깊이와 의미를 쉬이 따라올 수 있겠나.

료안지의 석정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우주를 보여주고,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펼쳐준다. 인문학에 시간이 더해진다면, 그것이 진짜 문화가되고, 명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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