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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일상

일본 여행을 준비하며.

꽃노래 2016. 8. 19. 22:53

 

3년만에 다시 오사카를 찾은 날은 다름 아닌 광복절이었다. 8월15일을 중심에 두고 2박3일간 일정을 짜면서 주변사람들의 걱정을 들었다.

'그래도 광복절인데 일본에 가는게 좀 그렇지 않아?'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국내에서 판판 노는 것보다, 오히려 일본에 머무므로서 '오늘이 광복절이다, 순국 선열을 잊지말자' 되새기는 것이 더 애국적이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도 망해가는 조선땅에 앉아 죽는날만 기다리느니 창시개명을 하고 일본에서 시를 쓰고 펜으로 독립의 초석을 닦는 길을 택했다. 감히 비교할 순 없지만, 같은 맥락이라 싶었다.

아내가 합창단 행사로 일주일간 해외 일정이 잡혔다. 하릴없이 혼자 집에 있느니 나도 어딘갈 좀 다녀와야겠다 싶어 고른 곳이 일본 오사카다. 비교적 저렴한 비행기 삯과 마침 읽고 있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유홍준 교수의 책을 읽고 행선지를 정하면, 홀로 있어도 홀로 다니는것 같지 않다. 여행에 있어 유홍준 교수의 글은 늘 좋은 가이드이자 스승이 된다.  여행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누군가 꼭 여행에 동행하고 싶은 이를 꼽는다면 유홍준 교수, 그리고 소설가 김훈씨를 든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을 넘어, 알지 못하는 것도 보이게 만들어주는 혜안과 관점을 늘 동경한다. 그래서 그분들의 글을 자주 찾는다.

처음엔 홀로 여행을 계획하였지만, 전 회사의 두 후배 성배와 성민이가 동행 의사를 밝혔다. 낯선 곳에서 철저한 고립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난 혼자 여행을 다닐만한 그릇은 못되는가. 참석의사를 밝혀준 후배들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퇴사한 후 이렇게 자주 연락을 하고 모임을 갖는지 궁금하다. 적어도 내 주위엔 이런 케이스가 없다. 매일 카톡 단체방으로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이야기 하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이 모임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한게 벌써 2년이 넘었다. 멤버는 점점 늘어난다. 결속력을 본다면, 이 모임은 죽을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추측이 아닌 확신이다. 내가 어떻게 이런 확신을 갖는가. 직원들끼리 강한 결속력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대표의 영향이었다. 대표의 성향을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부정성에 기인한 공격적 긍정성' 이라 할 수 있다. 오너로서의 막강한 권력을 극대화하여 회사를 운영하였는데, 부정성에 기인한 위기의식으로 거친 표현을 통해 직원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일이 잦았다. 그의 리더십의 원동력이다. 한계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근육의 부피가 커지려면 늘 임계점을 상회해야 한다. 업무역량도 마찬가지 매커니즘을 갖는다. 하지만 몸을 단련하는 운동과 삶의 근원이 되는 직업은 달랐다. 직원들은 힘들어했고, 하나 둘 씩 회사를 나왔다.  나오고 보니 제대로 일을 배워왔다는 감사함과 함께 그간 힘든 시절을 함께 버텨낸 동료애가 솟았다. 한 시간 동안 벌어졌던 일을 밤을 세워가며 이야기 할 수 있다. 모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미선이는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그렇게 해대는 것을 이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사총무팀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회사에 남아있었던 사람은 성배였다.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성격 만큼 마음이 모질지 못해 나오는 순간까지도 대표의 안위를 걱정했다. 직원 하나 퇴사하는데 거창하게 무슨 대표의 안위까지 걱정하느냐마는, 실제 인사총무팀의 업무 뿐만 아니라 대표의 개인 비서 이상의 업무 범위를 소화하고 있었던 탓에, 성배의 퇴사로 말미암은 대표의 실질적 불편은 자명했다. 퇴사 의사를 밝힌 성배를 그래서 더욱 붙잡으려 했고, 성배는 여린 마음에 더욱 모진 결정을 해야만 했다. 역시 있을 때 잘하는게 맞다.

성민이는 인턴 경쟁제도를 통해 입사한 최초의 직원이었다. 이 취업난에 극심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세 명의 인턴, 그 중 2주간의 실질 근무를 통해 단 한명만을 최종적으로 뽑아야하는 냉혹한 서바이벌의 생존자였다. 성민이가 살아 남은 가장 큰 이유는, 어떤 일이든 시키면 다 할 것 같은 강력한 의지와 유머러스 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탁월한 균형감각이었다. 나중에 얘기했지만 인사총무팀 막내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똑똑한체 해도, 너무 야망이 큰 모습을 보여도 적임자가 될 수 없었다. 성민이는 팀내 감초같은 역할을 충실해 수행해주었고 까다로운 회사의 규정과 실무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합격한 후에도 성민이는 전 회사에서도 다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인정 받는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비교적 빼어난 외모가 아닌데도 늘 여자들이 따랐다. 사람의 심리를 잘 아는 사람이 인간관계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이성에게 인기가 많다. 그래서 그는 늘 고민한다. 풍요속의 빈곤이다.

전 직장을 나와 성배는 프렌차이즈 회사의 인사총무팀 책임자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고, 성민이는 세콤의 담당기사로 안정적 미래를 설계 중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는 수 년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많은 경험을 공유했다. 직장이라는 평범한 플랫폼 속에 숨겨진 특별한 이야기들을 공유한 우리는 2016년에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전 직장동료 남자 셋이 여행중에 나눌 이야기들이야 뻔한 것들이지만, 새로운 곳을 보고 듣고 배우는 즐거움과 기대보다 후배녀석들과 함께 웃고 떠들것에 더 기대가 컸다. 이쯤되면 우리가 여행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여행지가 우릴 기다리고 있겠다 싶었다.

 

성배와 여행 전에 두 번을 먼저 만나 일정을 짰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일정은 첫날 숙소에 들르지 않은 채 간사이 공항에서 우메다를 거쳐 고베를 돌고, 둘째날은 숙소가 있는 교토를 중심으로한 문화재 탐방, 마지막 날은 나는 아라시야마, 후배들은 처음 가보게 될 오사카 성으로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는 구성이었다. 그간 덮어두었던 일본 관련된 책을 꺼내 들었다. 하루키의 여행법,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열광,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 각각의 개성있는 작가들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쓰인 일본론에 다시금 여행의 흥분이 고조되었다. 공교롭게도 아내는 예정되었던 합창단 공연 일정이 취소되어 결국 아내는 집에서 독수공방을 하고 나만 일본을 가게 되어 적잖이 맘이 쓰였다. 대인배 아내는 흔쾌히 일본행에 대한 승인을 철회하지 않았다. 마음의 깊이가 대한해협보다 넓다. 거듭 고마워하니 아내는 '왜 당신만 좋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한다. 아뿔싸, 내가 집을 비워주니 아내도 신이 난 모양이다.

 

내가 살면서 이토록 광복절을 기다린 일이 있었던가. 악의를 품은 듯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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