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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학생들과 이야기하며, 본문

되짚어보는 일상

일본 대학생들과 이야기하며,

꽃노래 2016. 9. 17. 12:44


이른 아침, 아라시야마를 찾아가다가 버스에서 잘 못 내린 역주변은, 초조한 내 맘과 달리 한산했다.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한 무리의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영어를 알아들을 것 같아 다가가 길을 물었다. 내가 일본어를 못 하니 자연 영어로 물을 수밖에. 말을 걸자마자 청년들은 한사코 손을 흔들어대며 '노잉글리시' 라고 외쳐댔다. 마치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듯 황급한 몸짓과 목소리로.  청년은 모두 8명. 여자 1명에 남자가 7명이었는데, 8명의 청년이 모두 영어를 못한다고 격하게 손사레를 쳤다. 이색적인 광경이다.

청년들을 등지고 다시 길을 찾기 위해 역 주변을 서성이는데, 잠시 후 무리속에 있던 한 여자가 머뭇거리며 다가오더니 '스미마셍' , 나를 부르고는 한 외국인을 내 앞에 데려다 놓았다. 이번엔 내가 당황했지만, 어디를 찾느냐고 묻길래 아라시야마를 가려고 한다. 란덴센을 타는곳을 모르겠다. 어디인지 알려달라 했다. 마침 자기들도 아라시야마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자신을 따라오라 한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여행 마지막 날, 성배, 성민이와 일정을 달리하여 홀로 여행을 즐기는데 마침 동행길 친구가 생기다니. 이 또한 여행이 가져다 준 고마운 변수다.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토박이 일본 사람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네덜란드 사람이고, 어머니는 미국 사람인데, 자신은 고베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어릴 때 미국과 네덜란드에 조금씩 가서 살았지만 자신은 일본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청년은 미국이나 네덜란드 보다는 이탈리아계 쪽에 가까운 외모라고 생각했다. 키는 185정도, 흑발에 부드러운 인상과 깊은 검정색 눈을 가졌다. 그는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한번 꼭 가보고 싶은데 기회가 잘 닿지 않는다고 했다.

외국인은 8명의 청년들과 일행이었다. 함께 다니는 친구들은 대학교 동기들인데, 고베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이번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끼리 교토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9월이 졸업이라고 하니 코스모스 졸업인가 보다. 학기가 어긋나게 졸업하는 것을 두고 한국에서는 '코스모스' 졸업이라고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일본에서는 뭐라고 할까. 쓸데없는 것이 궁금하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지역별 자치화가 잘 이루어져 있어 수도권에만 유명대학이 몰려있지 않다. 물론 최고의 대학은 도쿄대 이지만, 지방에 위치한 교토대도 그에 못지 않으며, 교토보다 더 서쪽에 위치한 고베 대학교도 전공별로 다르긴 하겠지만 인지도로 치자면 일본의 10대 대학안에 든다. 일본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교의 졸업반 학생 8명이 모두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 손사레를 치는 모습은 영어에 대한 일본인의 고질적인 울렁증을 실감케 한다. 아마도 독해나 작문을 시킨다면, 나보다 열 배는 더 잘할 것이다. 그래도 외국인(일본인이지만 외국인의 피를 가진) 친구와 함께 대학교 4년을 보냈으면서 아직 회화를 한마디도 못한다는 것은 조금 아깝지 않나. 어쩌다 중간에 여학생이 내게 조심조심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것을 두고 그 친구들이 '잉글리쉬 챌린져!(영어 도전자)' 라며 놀려댔다. 영어에 대한 문화와 인식 자체가 그래서야 어떻게 영어가 늘고 대화를 할 수 있겠나. 기본적으로 언어는 뻔뻔해야 는다고 생각한다. 못해도 막 던져보고,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감해야만 조금씩 늘어간다. 어쩌면 일본인들의 영어 울렁증은, 일본어 특유의 발음보다 그들의 주변을 의식하고, 실수할까 두려워하는 그 문화적 특성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여학생이 외국인 친구를 사이에 두고 통역삼아 내게 말을 건넸다. 아라시야마에 무엇을 보러 가느냐길래 '아름다운 풍경과 치쿠린을 보러간다' 했다. 한국에는 치쿠린 같은 곳이 없냐고 물었고, '담양'이라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구글로 검색을 한다. 영문으로 damyang 을 치니 대나무숲 이미지가 검색된다. 자기들끼리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스고이~' 를 연발한다. '점보팬더'가 살것 같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친절하고 역동적인 리액션은 생경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녀도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못 온건지 안 온건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외국인에게 졸업후에 무슨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학업을 계속할 예정이고, 다른 친구들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8명의 졸업반 학생 모두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아베 집권 후 일본의 실업률이 2016년 7월에 3.1%로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2012년 4.9%였던것에 비해 비약적 발전이다. 더구나 총 실업률이 아닌 청년 실업률만을 두고 비교한다면 일본은 2015년 5.6%로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 9.17% 에 비해 압도적 차이를 보인다.  모든 정황을 단순히 수치로만 비교할 순 없지만, 이런점을 고려할 때 8명의 미취업은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이었다.

일본의 젊은 교수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의 저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에서 그 이유를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임금격차로 설명한다.  비정규직의 급여가 정규직의 절반도 안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제반복지와 고용 안정성이 다를 뿐 실제 급여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한다. 실제 구인광고를 찾아보면, 도쿄의 경우 최저 시급이 대부분 1000엔 (11000원) 부터 , 간사이 지방은 900엔(10000원) 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 6030원에 비해 최소 30%에서 50%까지 차이가 난다. 시간당 11000원씩, 8시간 근무할 경우 하루 일당이 88000원. 주 5일로 한달을 근무하면 약 180만원이 된다. 연봉 2100만원으로,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준의 임금이다. 노동법에 의해 각종 수당을 더하면 2400만원 이상이 된다. 실제 아르바이트 만으로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프리터족으로 대변되는 아르바이트 생활인구의 대부분이 실망실업자에서 기인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보다 자주적 선택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다. 후루이치는 그의 저서에서 일본은 침몰하고 있지만, 그속의 청년은 저마다의 행복을 안고 살고 있다고 말한다. 국가와 민족주의에 귀속되어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한 국가의 광영을 구현하고자하는 청년은 이제 없고, 오로지 자신을 돌아보고 개인의 행복을 찾는다고 했다. 개인의 가치가 집단주의적 가치보다 우위에 있는 현재가 더 의미있는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찌 아르바이트로 연명 하는 삶이 그들의 선택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어,  '희망이 없지만, 불만도 없다'는 체념에 가까운 달관의 경지가 어쩐지 씁쓸하다.

 


아라시야마로 향하는 란덴열차 창밖으로 첫날 들렀던 쿄류지(광륭사)가 보였다. 청년에게 저 곳을 가본적 있느냐 물었다.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저곳에 일본의 국보 1호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역시 모른다 했다. 국보 1호라고 해서 '가장 중요한 보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지역적으로 순번을 매겨 각 지역의 유적/유물을 구분한 것 뿐이긴 하다. 그래도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있고, 국보 1호라고 한다면 국민의 상식 선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내게 두번째 충격이었다. 저곳에 어떤 보물이 있냐 묻길래 '미륵' 이라고 했다.  그 미륵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전해준 미륵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취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역사와 유적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한 청년의 무지라고 치부하기에는 국보1호라는 주제가 무거웠다. 

신라 도래인인 진하승이 창건한 광륭사 역시, 진하승이 '진씨' 라는 이유로 중국 진시황의 후손이라는 비석을 광륭사 앞에 세워 놓은 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열등감과 역사 왜곡을 실감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진시황은 '진씨'가 아닌 '영씨' 이다.  진시황은 '진'나라의 첫번째 황제(시황제)란 뜻으로 진시황이다. 중국의 오리지널리티를 동경했든, 신라로부터 문화를 전해받은 사실을 숨기고 싶었든, 열등감으로부터 기인된 왜곡임은 피할수 없다. 그런 그들에게 광륭사에 모셔진 일본의 국보 1호가 신라로부터 전해받은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민족적 자존감 훼손을 우려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국보1호를 깊이 있게 가르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06년 학부시절 학생대표로 훗카이도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내 또래였던 일본 대학생들은 조심스레 물었던 나의 질문에 독도가 한국 땅인 것을 알고있다며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하지만 아마 지금 자라며 교육을 받고 있는 어린 학생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6년 현재, 당시 언급했던 어린 학생들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대학생들이다. 2006년에 이들은 중학생이었다.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일본의 교육 시스템과 거짓을 진실이라 믿으며 세뇌되어가는 그들이 빚어낼 미래가 나는 두렵다.

아라시야마역 한 정거장 전에, 갑자기 그들은 이번역에서 내린다고 인사를 했다. 아라시야마까지 함께 갈줄로만 알았던 나는 마땅히 인사를 할 틈도 없었다. 아라시야마에서 찍으려고 함께 사진도 한장 안찍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이별을 맞았다. 그 친구가 내리고 나서야 나는, 이름을 묻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보다는 국가에 관련된 것을 물었고, 공통된 것 보다는 다른 부분을 찾으려 했다. 영어권이었으면 의례 이름부터 물어왔을 것을... 영어로 가장 먼저 배우는 문장은 'What's your name?' 인데, 우리는 서로 'Where are you from?' 을 가장 먼저 물었다. 나도 모르게 세뇌된 국가주의의 반증이다. 한국도 일본도 모두 개인보다는 배경에 집중하는 문화다. 그런면에서 나도 그도, 분명 한국인이고 일본인 이었다. 외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힘주어 말했던 그는 이로서 일본인임이 확실해졌다. 이는 긍정적인 점이 아니다. 세뇌된 국가주의는 개인을 보지 못한다. 국가와 국가가 대항을 할 때 역사적인 사실에 기인하여 극단적인 적대감으로 변질된다. 한일전으로 대변되는 국가대항전에 열을 올리고,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단편적 현상이 아닌 매우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이다. 개인으로 마주하면 더없이 좋은 친구가 뜻이다른 집단에 속해지면 하루아침에 적이 될 수 있다. 명목적 폭력이 합리화된다. 광복절엔 일본을 가면 안된다고 말하고, 내용보다는 겉모습에, 실리보다는 명분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모두 이로인한 폐단이다.

 

홀로 걷는 아라시야마는 아쉬움이 컸다. 더 나누고 싶고, 묻고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 

▲ 광복절을 맞은 광륭사 옆의 소방서에는 조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아시아를 해방시켜주겠다던 일본의 오만은

2016년 오늘, 조기로 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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