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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ong
거실 소파에 웅크려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작다. 체구가 작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만큼은 그렇게 작아보일 수 없다. 할머니처럼 TV를 보다가 스르륵 잠드는 것도 아닌데 아내는 최근 이렇게 소파에서 잠드는 일이 잦아졌다. 잠귀가 밝은 나는 아주 작은 소리와 변화에도 쉬이 잠을 깬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방문이 모두 닫힌 상태로 안방에서 나지막이 나를 부르시기만 해도 벌떡 일어났다. 이웃집에서 조금이라고 큰 소리를 내도 잘 수 없었다. 이웃집에 아기가 있을 땐 내가 함께 키우는 느낌이 들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학교땐 내방 창문 앞에 붙어있는 옆집의 불이 켜지면 나도 일어났다. 며칠전에도 안방문을 10센티정도 열어두고 자고 있는데, 잠시 와계시는 할머니께서 새벽에 거실쪽 화장실 불켜는 것을 알..
'야! 말도마, 새학기만 되면 수입 렌트카가 동이나서 구하지도 못해'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모인 친목회 자리에서 친구 와이프가 던진 말이다. 초등학교 또는 유치원 입학식날 아이를 태우고, 혹은 데리러 가기 위해 렌트 수요가 증대돼 '수입차' 가 귀하신 몸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10~30만원에 이르는 수입차 렌트비용은 분명 대부분의 부모에겐 무리한 지출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렌트가 아닌 '구매' 를 했겠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보여지기 위해' 무리한 지출을 하게 만든것일까. 유별난 편가르기, 근묵자흙 (近墨者흙)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부모들의 걱정은 예나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최근의 행태를 보면 현 시점에서 아이들의 편가르기는 정점을 찍고 있는것 같다. 이제 막 유치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유품을 정리하면서 낡은 아버지의 기타를 잠시 밖에 내어 두었다. 쓸일이 없을 테니 버리는게 낫겠지. 아버지의 기타를 바라보면 내가 못견딜 것만 같아 눈앞에서 없애야만 했다. 그래도, 며칠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가슴 가득 이 기타를 품고 계셨을 텐데.. 생각이 미처 다시 기타를 가지러 나갔다. 기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은 그 짧은 순간에 누군가 기타를 들고 가버린 것이다. 거짓말 같이 아버지의 기타는 그렇게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영영 내곁을 떠나버렸다. 꼭 아버지처럼. 어릴적 누운 머리맡에서 기타를 튕기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다. 중년의 어머니의 눈에는 청승이었을 그 모습이 처녀적 어머니의 눈에는 낭만이었겠지. 머리맡에서 울리는 기타소리에 눈을 감으면..
진정한 탐험의 여정은 새로운 경치를 찾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에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 -
누구나 주변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일생동안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사귀게 되는 '친구' 는 더욱 그 영향력이 지대하다. 당시엔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훗날 뒤돌아 보면 특정한 친구들로 인해 내 삶과 생각의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변혁의 현장에서는 잘 모른다. 역사와 같이 시간이라는 영양소가 갖추어지면 당시의 삶이 전체적인 윤곽으로 드러난다. 친구를 잘 못 만나 삶이 망가졌다고 푸념하거나 타박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비행을 일삼는다고 나쁜 친구도 아니고, 공부를 잘한다고 좋은 친구도 아니다. 삶의 주인은 자신이고, 어떤 친구를 만났든 유유상종의 의미로서 당사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분명 중요하다. 친구의 영향이 당장 특별한 결과..
첼로의 현을 활이 밀고 지나갈 때 진동하는 음파는 딱 그 굴곡만큼 사람에게 파고든다. 신음하는 듯한 저음은 높은 밀도로 혈관을 비집고 들어온다. 음파에도 삼투압이 작용되는가, 혈액 보다 밀도 높은 소리는 보다 밀도가 낮은 마음곳으로 빨려 올라간다. 목소리는 두 개의 손가락 같이 생긴 성대의 근육을 붙이고 떼어가며 수고롭게 떨려 울리는 소리의 배열이다. 아랫배를 타고 올라와 목인지 코인지 모를 어딘가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감동이라는 목적을 향해 차분하게 허공을 가른다. 온몸의 에너지를 태워 오로지 성대를 지나 외롭게 밀려 나온다. 서른 둘에 스스로의 마지막 날을 정한 김광석의 목소리는 서른 다섯의 나를 사로잡는다. 육십의 나도 여전히 사로잡을 것이다. 군복무시절 늘 김광석의 노래를 끼고 듣던 후배 창우에게..
책을 살까 새 신을 살까 고민하는 일이 괴롭다. '오늘'을 살까 '내일'을 살까 결정해야하는 기로에서 방황한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후배 미선이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길 원하면서 부자가 되지 않기 위한 곳에 돈을 쓴다' 는 어떤 투자자의 말에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그녀는 나름의 목표 의식을 가지고 오늘의 소비를 내일로 유보하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알라딘 서점에서 장바구니에 7~8만원어치 책을 담으면 10권 내외가 된다. 중고책의 값이 착해 한가득 책을 구매할 수 있다. 책을 사는 즐거움은 구매의 기쁨으로 끝나지 않고 책을 읽은 후에도 오래 유지된다. 소비를 위한 지출이 아닌 미래를 위한 지출의 전형이다. 구매의 기쁨 자체 뿐 아니라 두고두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 감동의 폭을 키운다. 알게되고, 생각하게..
'잘 살기만 하면 독재자가 무슨 상관인가.' 박정희를 옹호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다른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인 판단과 대화를 주도하는 어머니기에 내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일생 자식하나 키워보겠다고 고생하며 살아온 어머니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생존이었다. 어머니께서 이러한 무지한 생각을 하시는 것은 그간 파시즘과 같은 언론에 노출되고 지속적으로 받아온 독재정권의 세뇌교육 때문이지 어머니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사회 하에서는 개개인의 사상과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개인의 생각을 통제하고 제한하며, 하나의 당이 나라를 통치하고, 다른 생각을 말살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보수세력이, 자신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공산주의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