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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일상

수도자의 얼굴

꽃노래 2019. 11. 3. 12:10

 

11월에 접어든 포천의 새벽 공기는 벌써 매섭다. 아내를 따라 모처럼 아침일찍 교회에 나선 나는 왜이렇게 교회 안이 춥나 몸을 움츠리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예배가 시작되고도 한참동안 몸을 비벼대다가 예배단 앞에 가지런히 놓인 낡은 구두 한켤레에 눈이 멎었다.

 

목사님의 발은 얇은 양말 하나에 의지해 추위에 맞서고 있었다. 오늘보다 더 추운 한겨울 혹한에도 칠순을 맞은 목사님은 저렇게 신발을 벗고 서 있었을 것이다. 오늘 처음 알았다. 신발 안에 들어있는 내 발가락은 추워 계속 꼼지락거린다.

 

올해로 개회 58주년을 맞은 교회는 수도자의 초심을 잃지 않은 목회자의 의지를 따라 지금껏 걸어왔다. 몇년 전 장성한 아들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다음 날에도, 목사님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뜻이라' 는 성경속 말씀에 충실하며 아무일 없다는 듯 신발을 벗고 예배단에 올라 예배를 집도했다. 신자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했다.

 

장례 후 한달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아들의 사망소식을 신도들에게 알렸고 일체의 조문과 문상을 받지 않았다. 신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목사님의 슬픔이 크지 않길 바라며, 하나님의 뜻이 그곳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믿음과 용기를 달라는 기도. 그뿐이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던 날 축도 기도를 맡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주여, 이들에게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믿음이 없는 나는, 사람과 사람이 결혼하는데 서로를 의지해야지, 신을 의지해서 되겠는가. 그 기도문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거대한 벽에 직면 했을 때,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예상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이 닥쳐왔을 때,

그 무력함 앞에 주저앉지 말라고 목사님은 기도문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목사님의 기도 앞에 내가 품었던 의문은, 모든 상황이 내가 생각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한 오만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 키워놓은 자식을 부지불식같에 잃었던 날,

그날 밤 두눈을 감고 그의 신 앞에 꿇어앉아 어떤 심정으로 어떤 기도를 했을까.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나의 자식이 차가운 시신이 된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

어떤 마음에도 비견할 수 없는 그 아픔을 기도로 치환해내는 과정이 그에게는 어떤 일이었을까.

 

 

수도자에게 신은 가혹한 존재일까 자비로운 존재일까.

한겨울 예배단 위에서 얼어붙는 발가락의 통증을 50여년간 견뎌온 수도자는

이제 그 통증과 추위에 익숙해졌을까 아니면 오늘도 하나의 의식으로 그것을 견뎌내고 있을까.

 

신앙없는 경박한 자는 여전이 궁금한 것이 많고, 늙은 수도자의 표정없는 얼굴은 부쩍 주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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