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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ong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시절 도덕시간이다. 천재적 재능을 지녔지만 유년기에 겪은 학대로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윌헌팅. 그를 포용하고 치유하는 스승 숀. 무려 18년 전이지만, 훈훈한 사제간의 영화로 내기억속에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을 더 보았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영화. 클래식이다. 이번에 이 부분에서 특별히 감명을 받는데, 다음번에는 또 저 부분에서 감명을 받는다. 마치 예술조각처럼 멀리서 볼 때, 정면에서 볼 때, 옆에서 볼 때, 그 때 그 때 감흥이 다르다. 명작의 조건이다. 처음엔 멧데이먼에 주목했다. 멧데이먼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이다. 최근영화 마션에서 한 명의 우주 비행사를 구출하기 위해 온 지구인들이 힘을 합하여 응원했던것도 사실 멧데이먼이..
굴전 집에 몇시에 오는데? 아내의 목소리에서 채근이 느껴졌다. 평상시보다 조금 들뜬듯한 목소리로 나의 귀가시간을 물어올 땐 십중팔구 집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은 까닭이다. 한 시간 반여 고픈배를 움켜쥐고 집에 사랑하는 와이프가 어떤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릴지를 상상하며 집으로 향한다. 진수성찬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음식을 그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깨질까 두려운 이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그렇게 버스에 몸을 싣는다. 여느 때 보다 서둘러 현관 번호키를 누르고 현관문을 활짝 열면 고소하고 얼큰한 음식냄새가 훅 풍겨온다. 처음 현관문을 열면서 느껴지는 명쾌한 음식냄새로 상상했던 밥상의 이미지를 확정짓는다. 막연하고 고단했던 퀴즈가 현관문을 열면서 막을 내린다. 고소한 이 냄새의 주인공은 굴전이..
시화(時畵)도 종교적 의미부여나 충절, 혹은 지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예술을 하는 사람을 재인(才人)이라는 말로 깎아 천대하던 시절. 소화는 의붓 동생 동호와 함께 소리꾼 양아버지의 손에 길러진다. 소리품을 팔아 하루를 먹고사는 삶은 풍요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고, 더구나 개화 이후 신식 놀거리가 늘어나는 시점에서의 '소리' 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구닥다리 재기에 불과했다. 지금이야 예술이라는 것이 본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만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예술 자체에서의미를 찾기보다 예술을 활용한 사상의 교육이나 정치적 활용에 더 비중을 두었다. 시기는 좀 일렀어도 서양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그의 작품 금시조(金翅鳥)에서 예적 기질을 타고난 고죽(古竹) 이라는..
김태용 감독의 만추. 영어로 레이트 아톰, 늦겨울이다. 제목 자체를 풀이하자면 '한 가을' 이나 '깊은가을' 정도가 되지 싶다. 유홍준 교수는 광주비에날레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관광 가이드를 해주면서 한국의 절이 '깊은 산(deep mountain)' 에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깊은산' 은 없고 '높은산(High mountain)'이 있다고 외국인들이 그의 영어를 교정 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산사를 돌아보고 나서야 깊은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만추도 마찬가지로 늦겨울 이라는 표현 만으로는 영화속에 펼쳐진 가득찬 가을의 외로움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오로지 '만추'라야만 그 느낌을 다할 수가 있다. 문학작품에 있어 원어의 중요성이다. 만추라는 작명센스는 이현승 감독의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홍상수 감독 제목부터 수수께끼다. 저 제목이 무슨의미를 담고 있는걸까 내내 궁금해하며 시험문제를 푸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았다. 정재형과 김민희, 둘다 내로라 하는 수준급 배우들이다. 김민희는 내가 고등학교때 데뷔해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언제나 한결같은 미모를 뽐낸다. 청초하고 여리여리하지만 차가움을 지녔고, 고유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연기를 참 잘한다. 장동건과 함께 출연한 영화 '우는남자' 에서는 안타깝게도 우는 남자보다 울던 여자가 더 기억에 남았다. 내 기억속에 우는남자는 망했지만 김민희는 흥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부끄럽다. 영화 자체가 부끄러운게 아니라 보고 있는 내가 낯이 부끄러워진다. 민망함이다. 후배 남형군과 이야기하곤 했는데, 홍상수 감독의 직설적..
세상에 음악은 오로지 락(ROCK) 밖에 없다고 믿었던 혈기왕성했던 열 여덟살 그 시절, 비오는 날이면 언제나 교실 창밖을 지그시 바라보던 선생님이 계셨다. 40대의 남자인 선생님은, 피부가 까무잡잡했고, 약간 장발의 스타일에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검정색 뿔테 안경을 썼다. 문학은 담당하시던 그 선생님의 성함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외모와 달리 여성스러운 선생님의 말투에 남학생들은 질색을 했고, 짖궂은 녀석들은 고자라고까지 비아냥 거렸다. 그 시절 남학생들은 선생님의 감수성을 그저 '호모' 라는 식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다. 남자고등학교의 특성이라서 그런지 학생 중에 조금 여성스러운 성격의 친구가 있으면 우선 괴롭히고 놀려대는것이 일쑤였다. 나 역시 그 철없는 놈들중 하나였다. 감수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처가집으로 향할 때 내 머릿속엔 온통 '종교' 로 가득차 있었다. 처가는 독실한 크리스찬 집안이다. 아내는 뱃속에서부터 종교가 정해진 이른바 '모태신앙' 이었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포천에서 제법 큰편에 속하는 교회의 장로, 권사였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로 인해 크리스찬 집안이 얼마나 같은 종교의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길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종교는 삶의 이유이자 존재의 의미이지만, 나에겐 무사히 통과해야할 관문이었고, 어떻게든 빠져나올 궁리를 하게하는 불가피한 미션이었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가던 2013년 2월, 설을 맞은 포천은 온통 얼음 나라였다. 체감온도 영하20도를 넘나드는 추위에 개들도 집안에 웅크리고 앉아 나와 짖지도..
모처럼 대학동기들과 한강에서 치맥한잔 할 생각으로 여의도에 모였다. 여름밤 한강의 주변은 생동한다. 운동하는사람들로 활력 넘치고, 삼삼오오 모여 먹고 노는 사람들로 생기발랄하다. 한강르네상스다 뭐다 욕은 했지만 막상 한강을 이용할 땐 편익을 보는게 사실이다. 다만, 천문학적으로 투입된 예산의 효익이 모두 시민에게 돌아온것이 아니란게 가장 문제겠지만.. 그늘막을 들처매고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한참을 돌았다.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로 마땅히 좋은 자리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하릴없이 쓰레기를 모아두는 그물망 옆으로 자릴 잡았다. 근처에 좋은 자리가 나면 옮길 계획이었다.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여 자리를 잡았지만, 잠깐식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 마다 우리 자리 쪽으로 쓰레기 냄새가 올라와 코를 킁킁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