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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일상

선생님의 감수성

꽃노래 2015. 9. 4. 00:37

 

세상에 음악은 오로지 락(ROCK) 밖에 없다고 믿었던 혈기왕성했던 열 여덟살  그 시절,

비오는 날이면 언제나 교실 창밖을 지그시 바라보던 선생님이 계셨다.

40대의 남자인 선생님은, 피부가 까무잡잡했고, 약간 장발의 스타일에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검정색 뿔테 안경을 썼다.

문학은 담당하시던 그 선생님의 성함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외모와 달리 여성스러운 선생님의 말투에 남학생들은 질색을 했고, 짖궂은 녀석들은 고자라고까지 비아냥 거렸다.

그 시절 남학생들은 선생님의 감수성을 그저 '호모' 라는 식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다. 

남자고등학교의 특성이라서 그런지 학생 중에 조금 여성스러운 성격의 친구가 있으면 우선 괴롭히고 놀려대는것이 일쑤였다.

나 역시 그 철없는 놈들중 하나였다.

 

감수성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남고의 사내놈들 틈바구니에서 문학선생님은 비오는날마다 창밖을 바라보셨다.

선생님이 바라보시는 광경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 역시 선생님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비내리는 창밖의 풍경보다는  창밖을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더 선하다. 

 

문득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비가 오는게 정말 아름답지 않니'

 

아이들을 엄하게 통제하지 않는 선생님의 성향탓인지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비웃으며 무례한 답변을 날려댔다.

'하하하, 무슨 고자같은 소리에요', '선생님이 더 아름다워요', '됐고 수업이나 해요'

 

선생님은 아랑곳 않고 하던말씀을 계속하셨다.

 

'너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교과서에만 있지 않아. 지금 창밖으로 내리는 저 빗물이 하나하나의 문학작품이야.'

 

다소 여성스럽게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조하는 이는 없어 보였다.

당시 나도 별로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선생님이 어쩜 저리 느끼하실까' 정도만 생각했다.

 

 

십 오년이 지난 지금 나는 비가오면 창밖을 본다.

집에 있는날이면 문득 비가오길 바라고, 비가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문학선생님이 생각난다.

삶속에서 문학을 찾고, 내 삶이 곧 문학이 된다는 것.

문학선생님은 책을 벗어나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셨던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경치를 감상하고,

무엇인가로부터 감명을 받을 때면 가끔

창밖을 바라보시던 문학선생님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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