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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보는 일상

굴전

꽃노래 2016. 1. 9. 14:42

굴전

 

집에 몇시에 오는데?

아내의 목소리에서 채근이 느껴졌다. 평상시보다 조금 들뜬듯한 목소리로 나의 귀가시간을 물어올 땐 십중팔구 집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은 까닭이다. 한 시간 반여 고픈배를 움켜쥐고 집에 사랑하는 와이프가 어떤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릴지를 상상하며 집으로 향한다. 진수성찬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음식을 그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깨질까 두려운 이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그렇게 버스에 몸을 싣는다.

 

여느 때 보다 서둘러 현관 번호키를 누르고 현관문을 활짝 열면 고소하고 얼큰한 음식냄새가 훅 풍겨온다. 처음 현관문을 열면서 느껴지는 명쾌한 음식냄새로 상상했던 밥상의 이미지를 확정짓는다. 막연하고 고단했던 퀴즈가 현관문을 열면서 막을 내린다. 고소한 이 냄새의 주인공은 굴전이다. 아내가 직접 굴전을 해준건 이번이 처음이다. 굴전은 그간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릴적 학교에 다녀오면 주방에 어머니께서 환히 웃어주시던 모습 그대로 아내가 서 있다. 굴전을 보고 지나치게 놀라는 나를 보며 아내는 환하게 웃는다.

 

아무리 먹어도 질릴 줄 모르는 이 굴전은 도대체내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도 없다. 분명 어렸을 땐 좋아하지 않았는데. 군복무 시절에는 이미 굴전을 좋아하고 있었다. 한번은 휴가를 나왔는데 부엌에 굴전이 덩그러니 놓여있는게 아닌가. 큰 접시에 가득 담겨있어 한큐에 그걸 다 집어먹고는 이틀을 누워있었다. 자다가 묽은변이 나오는 줄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배탈이 났다. 그정도로 호되게 당하면 좋아하는 음식도 싫어질법한데, 쌀처럼 굴전은 나에게 물리지 않는 신기한 음식이다. 퇴근길에 굴이 먹고 싶으면 홈플러스에 들러 조그맣게 포장되어 있는 굴 한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나온다. 집에 손님이라도 온다면 소주한병에 굴을 또 달랑달랑 들고 나온다. 홈플러스 매대 직원이 나를 기억한다면 굴중독자일까 알콜중독자일까.

 

굴 한알을 한 입에 훌쩍 담아넣고 잘근 씹으면 싱싱한 굴이 바다향을 듬뿍 내뿜는다. 미스터 초밥왕의 한장면처럼 눈을 감으면 바다가 펼쳐진다. 소믈리에가 와인을 머금고 여느 포도밭을 헤치고 다니듯 나는 굴을 입에물면 바다를 씹는다. 알이 크건 작건 그 한 덩어리에 바다가 온전히 담겨있다. 바위에 성글게 붙어서 파도를 맞던 세월을 훔쳐서 먹는다.

 

입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향긋한 생굴도 좋지만, 고소한 계란옷을 입고 노릇하게 익어 풍미를 더한 굴전은 생각만 해도 배가고파진다. 배가 아무리 불러도 굴전은 최후의 한 개를 더 먹을 수 있다. 여럿이 굴전을 먹다가 한 개가 남는 상황은 정말이지 고역이다. 특히 후배와 같은 손아랫사람들과 먹을땐 더욱 그렇다. 낼름 집어삼키고 싶지만 체면치례하느라 안절부절 못한다.

 

한번은 굴전에 차가운 와인을 곁들이면 입안에서 향이 완성된다는 글을 보고 와인과 함께 먹어 보았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난 그냥 굴전만 먹는게 좋더라. 굴전을 먹는데 무엇을 더 곁들인단 말인가. 굴전은 와인을 맛있게 해주는 조미료가 아니다. 굴전 그대로의 굴전이다.

 

굴전을 먹으며 세상 다가진 행복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또한가지 폭탄 선물을 했다. 인터넷으로 굴을 1kg 주문했다는 것이다. 보통 가까운 수퍼나 생선가게에서 한두봉지씩 사서 한끼 먹고 만족했는데, 적어도 며칠은 줄창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달리 행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