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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의 소리, 서편제 [2012.4.30] 본문

영화 이야기

한(恨)의 소리, 서편제 [2012.4.30]

꽃노래 2016. 1. 6. 22:55

 

시화(時畵)도 종교적 의미부여나 충절, 혹은 지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예술을 하는 사람을 재인(才人)이라는 말로 깎아 천대하던 시절.

소화는 의붓 동생 동호와 함께 소리꾼 양아버지의 손에 길러진다. 소리품을 팔아 하루를 먹고사는 삶은 풍요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고, 더구나 개화 이후 신식 놀거리가 늘어나는 시점에서의 '소리' 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구닥다리 재기에 불과했다.  

 

지금이야 예술이라는 것이 본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만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예술 자체에서의미를 찾기보다 예술을 활용한 사상의 교육이나 정치적 활용에 더 비중을 두었다. 시기는 좀 일렀어도 서양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그의 작품 금시조(金翅鳥)에서 예적 기질을 타고난 고죽(古竹) 이라는 인물을 통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고정적 관념에 바쳐지는 기존의 종속적 예술이 아닌, 순수한 예술을 갈망하는 예인(藝人)의 일생에 걸친 갈등을 그려낸 바 있다.

영화 서편제의 '소화'는 얼핏보면 소리꾼 아버지의 손에 길러져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리를 배우게 되고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욕심을 딸에게서 성취하려는 어긋난 목적의식으로 눈까지 멀게된 불운의 여주인공으로 그려지지만, 실은 '소리' 를 얻기 위해 스스로 한(恨)을 만들어가길 멈추지 않는 진정한 예인이다.

 

이문열의 소설 금시조에서 늙은 예술가 '고죽'은 일생을 두고 자신의 작품 속에서 '금빛날개를 쳐 올리며 비상하는 새' 를 보고 싶어하지만 결국 평생의 한이 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기 직전 자신의 작품을 모두 모아 스스로 불태워 버리면서 그 불속에서 날아오르는 금시조를 보게 된다. 결국 예술의 경지에 '끝' 이라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눈앞의 당근을 쫓듯 달려나가 붙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놓고 맡기는 데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화 역시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멀게하면서 까지 알려주고자 하였던 한을 소리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십수년만에 나타난 동생의 북장단에 그 소리를 담아낸다. 자신을 동생이라 소개하지 않았지만 소화는 동생의 북장단에서 아버지의 숨결을 느꼈고, 생사를 모르던 동생의 장단에 겹겹이 쌓인 한을 그렇게 소리로 풀어낼 수 있었다. 서로를 알아 보았고, 또 서로 알아보았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지만, 끝내 한밤의 장단으로 모든 대화를 갈음하였을 뿐 또다시 각자의 길을 걷는다. 한의 모순을 바탕으로 끌어올리는 예술의 경지. 붙잡으려 않고 놓고 맡기므로써 두 인물 모두 고결한 예술의 경지에 닿아 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피천득 선생의 '인연' 또한 외형적 체념을 대변하는 '한' 이자 그것을 뛰어넘는 고결한 경지가 아닐런지.

 

예술적 경지야 어떻든 못내 한번 부둥켜 안아보지 못하고 헤어지는 두 남매를 바라보는 관객의 찢어질듯한 안타까움은 어떻게 풀어내야 하나.
흰꽃(素化)의 눈물과 닮은 그 '소리'가 계속 귓가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