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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본문

영화 이야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꽃노래 2016. 1. 6. 14:08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홍상수 감독

 

 

 

 

제목부터 수수께끼다. 저 제목이 무슨의미를 담고 있는걸까 내내 궁금해하며 시험문제를 푸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았다.


정재형과 김민희, 둘다 내로라 하는 수준급 배우들이다. 김민희는 내가 고등학교때 데뷔해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언제나 한결같은 미모를 뽐낸다.
청초하고 여리여리하지만 차가움을 지녔고, 고유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연기를 참 잘한다. 장동건과 함께 출연한 영화 '우는남자' 에서는 안타깝게도 우는 남자보다 울던 여자가 더 기억에 남았다. 내 기억속에 우는남자는 망했지만 김민희는 흥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부끄럽다. 영화 자체가 부끄러운게 아니라 보고 있는 내가 낯이 부끄러워진다. 민망함이다. 후배 남형군과 이야기하곤 했는데,
홍상수 감독의 직설적인 화법이나 극중에서 던지는 대사들은 남자의 심리를 꿰뚫고 그 대사의 본질을 들어다보게 해준다.
다시말해 여자를 꼬시기위해 사사로이 던지는 남자들의 멘트들을 단어 하나하나 해부하여 관객에게 공개한다. 관객중에는 여자들도 많다.
옆에 앉은 여자에게 내 마음을 들킨것 같이 창피함을 느끼게 된다. 홍상수 감독이 남자의 심리를 팔아 돈을 번다며 나무란적도 있다.

 

홍상수 감독 작품을 모두 찾아본것은 아니지만, '잘알지도 못하면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생활의 발견' 등 몇몇 작품을 통해 공개된 남자의 속내는
염치없고, 불쌍하고,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게 홍상수 감독 작품의 매력이다. 

김기덕 감독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수치스러움과는 종류가 다르다. 김기덕 감독 작품속에 등장하는 남자는 남자관객에게 치욕감을 준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는, 한남자의 회상에 의거하여 전개 된다. 똑같은 이야기를 전반부 후반부로 나누어 약간 다른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내가 느낀바로는 전반부의 이야기는 사실(극중에서 실제 일어난 일) 이고, 후반부의 이야기는 남자의 회한이 담긴 픽션이다.

몇 년 전에 만났던 그 여자를 그때 이렇게 잘 꼬셨더라면 어떻게 잘해볼 수 있었을텐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갖는 이 아쉬움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것이다. 그때 그 말 대신 이런말을 던졌어야 했어. 그때 그 행동 말고 이런 행동을 했어야 했어...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일들을 그땐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도무지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은 동일하게 구성하고 주인공의 멘트나 행동을 약간씩 수정하여 이상적인 결말을 맺길 바라는 아쉬움이 영화 전개의 핵심이다.  이러한 프레임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극중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정재형) 의 몇몇 행동들이 쉽게 이해가 된다.
특히 후반부 (같은 이야기가 두번째 반복되는 구간)에서 정재형이 자신의 작업(?)을 방해한 여성들앞에서 옷을 홀딱 벗는 장면이 있는데,
주인공 나름대로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이해하였다. 나체가 되어 여자들에게 들이밀면 아무리 드센 여자도 당황하고 만다. 기가 세고 자신에게 공격적이었던  그녀들에게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취한척하고 홀딱 벗고 들이대면서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거의 성공할 뻔한 작업을 그녀들의 입방정으로 훼방놓는 모습을 보며 남자 관객의 입장에서 매우 못마땅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나체 장면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극중에서 바람둥이 영화감독 역할을 맡은 정재형은, 낯선 남자가 있는 곳에서는 항상 작업을 성공시키지 못한다.
아니, 작업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멘트를 날리며 추근대지 않는다. 여자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만 사냥감을 노린다. 낯선 남자는 모두 경쟁자다.

남자들은 안다. 저 자식이 저 여자에게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던지는지를.

내가 설명해주기 전까지 아내는 정재형의 그런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부끄럽다. 다 까발려지니까.


번쩍번쩍하는 블록버스터나 헐리우드 스타들이 등장하는 대형극장의 박스오피스도 좋지만, 이렇게 수수께끼같은 명화를 풀어가며 관람하는 재미는 더욱 쏠쏠하다. 스크린을 통해 머리를 깨끗하게 비워주는 우리나라의 명감독들이 더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관객이 더 찾아주어야 할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여가시간에 영화를 보러갈거라면 광화문 시네큐브를 먼저 검색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