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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ong
'너희 둘이 결혼하면, 둘중 하나가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10곳의 점집을 찾았는데, 가는 점집마다 위와 같이 섬뜩한 점괘가 나온다면, 함부로 흘려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위험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데..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고, 그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역술인들의 말.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십 수년 전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알고싶다' 에서 '역술인'에 대해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스텝들이 죽은 사람의 사진과 사주를 들고 다니며 역술인들에게 그사람의 운명을 물었다. 그 중 두명의 역술인이 크게 역정을 내었다. 어디 죽은 사람의 사주를 들고와서 사람을 시험하려 드냐는 것이었다. 그중 한 역술인은..
영화감상은 수동성이 강하다. 주어진 시간안에 감독의 의도대로 그자리에 앉아 집중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나중에 DVD를 구매하여 다시보는것이 아니라면 놓친 대사는 다시 들을 수 없고, 감명깊었던 장면도 기억속에 보존하여 곱씹어야 한다. 상영시간 내에 영화의 모든 내용을 온전히 기억에 담아 나와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책읽기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수능의 듣기평가와 같다. 물론 영화를 보는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는 책읽기로 따진다면 책을 읽다말고 쓰레기통에 처 넣는 것과 같으므로 이것만으로 영화감상의 수동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영화감상의 제한성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만든다. 정해진 러닝타임만큼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전제되어 있다. 영화를 예매하는것..
보르헤스의 단편소설에서 늙은 작가 보르헤스가 공원을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아있는 젊은이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젊은이는 과거의 자신이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에단호크 주연의 영화 타임패러독스에서도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을 조우하지만, 처음에는 이들 역시 서로가 자기 자신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결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생길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사를 하며 발견한 일기장을 통해 나는 중학교시절의 나를 만났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영화속의 일은 아니더라도 서른 네 살의 내가 열 여섯의 나를 만났다. 일기장속에 담긴 중학생의 나는 자신의 첫키스 상대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이 고민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물음이 그때 그에게는 첫키스였다. 신촌에가서 힙합..
퇴근 후 집에 오는길 오늘은 꼭 부석사를 가야겠다 다짐한다. 꼭 두해전 여름에 후배 남형이와 함께 다녀왔던 부석사의 기억이 너무나도 좋아 봄이면 꽃구경, 여름이면 산들바람,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눈덮인 부석사를 그리며 가야지가야지 했다. 금요일 비교적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 아홉시. 아내와 바삐 밥을 챙겨먹고 무작정 떠나자고 채근했다. 목적지를 알리지 않고 가려 하였으나 그래도 알려야 할것 같아 부석사를 간다 했다.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달리 할일을 계획해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10시에 출발해 꼬박 3시간을 달려 영주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내리 달려 내려온데다가 깜깜한 밤이라 주변 풍경하나 돌아볼 새 없어 여기가 서울인지 영주..
아내가 울었다.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울었다. 친정엄마, 시어머니의 반복된 질문, 그리고 손이 귀하다는 점쟁이의 말. 모든것이 아내를 힘들게 했다. 친구의 소식은 축하해줄 일이지만 상실감의 눈물이 먼저였나보다. 이제 결혼한지 8개월 남짓 되었고,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계획한지는 두어달도 채 되지 않았다. 아내의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은 알고 있었지만, 눈물앞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결혼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이 무색할만큼 결혼을 예찬해왔다. 아내와 나는 그만큼 잘 맞았고, 감히 행복하다고 자부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다. 아직 있지도 않은 아기가 우리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부의 중심은 부부여야지, 아이가 되어선 안된다. 우리의 행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결혼한지 보름만에 아빠가 될 예정..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 시간의 무게는 제각기 다르다. 인사담당자로서 채용을 위해 이력서를 읽고 평가하여 당락을 결정하는 일이 늘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가끔은 더욱 곤혹스럽다. 각자 살아온 삶의 무게가 다른데, 채용은 그 삶의 무게만으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36살의 여성지원자는 신입 MD로 지원을 했다. '나이가 많다고해서 상대적으로 어린 직원들과 업무를 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던 그 지원자는, 결국 그 나이때문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상대적으로 더 적합한 사람이 있었다. 부모님은 병석에 누워계시고, 어린 동생 두 명을 보호하고 있다는 한 지원자는 31살이었다. '저는 절박합니다.' 라고 호소하였지만, 또한 고배를 마셨다. 절박함에..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 에서 이탈리아를 두고 고급 콜걸 이라 했다. 스스로는 무엇하나 노력해서 생산할줄 모르고, 오로지 돈주고 뒷바라지해주는 남자가 부족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창부. 조상 잘만난 덕에 그저 잘먹고 잘사는 타고난 팔자라는 것이다. 부러움 섞인 넋두리다. 태어나자마자 수억대 계좌를 물려받은 갓난 아이들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의 그런 푸념과 다르지 않다. '우리 이탈리아에 와 있어.' 비행기에서 내릴 때 아내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혼여행지로 이탈리아를 가자고 한것은 아내의 의견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는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보고싶어했다. 마침 밀라노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 선중이가 있었고, 나 역시 머나먼 타국에서 친구와의 재회에 설..
김광석의 목소리는 피부를 울린다. 첼로의 선율같다. 김광석의 가사는 세월이다. 아련하고 피할 수 없다. 무심한듯 읊조리는 그의 노래는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 같지만 파도가 되어 맘을 적신다. 복받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그렇게 스스로 생을 끊었는가. 음악만으로 흩어내기에는 그의 천재적인 감수성이 무겁다. 20대에 부른 60대의 삶에 김광석이 있는것 같다. 노래속에 풀어놓은 삶이 곧 그의 이야기이다. 내 나이가 60이 되어도, 20세의 김광석이 지어놓은 노래에 마음을 담겠지. 애석하다. 노래만 남겨놓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