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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다시 가고 싶지 않은 3가지 이유 [2013.11.16] 본문

되짚어보는 일상

로마를 다시 가고 싶지 않은 3가지 이유 [2013.11.16]

꽃노래 2015. 8. 8. 00:54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 에서 이탈리아를 두고 고급 콜걸 이라 했다. 스스로는 무엇하나 노력해서 생산할줄 모르고, 오로지 돈주고 뒷바라지해주는 남자가 부족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창부. 조상 잘만난 덕에 그저 잘먹고 잘사는 타고난 팔자라는 것이다. 부러움 섞인 넋두리다. 태어나자마자 수억대 계좌를 물려받은 갓난 아이들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의 그런 푸념과 다르지 않다.

 

 

'우리 이탈리아에 와 있어.' 비행기에서 내릴 때 아내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혼여행지로 이탈리아를 가자고 한것은 아내의 의견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는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보고싶어했다. 마침 밀라노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 선중이가 있었고, 나 역시 머나먼 타국에서 친구와의 재회에 설레하며 신혼여행지를 이탈리아로 정하는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탈리아. 영원한 도시 로마, 르네상스의 본고장 피렌체. 몽환의 물의도시 베네치아와 세계 최고 패션도시 밀라노. 7박9일간 이 네 도시를 돌아보는것으로 일정을 꾸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는 환상 그 자체였다. 인문학적 지식없는 여행은 시간낭비 돈낭비라며 이탈리아 관련 서적을 사들이고 바쁘게 준비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시점에서 다시 이탈리아를. 아니, 로마를 가라고 한다면 마다할만한 세가지 이유가 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 쓰였던 부분은 '소매치기' 였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아볼수록 걱정되는것이 그 소매치기였는데, 어쩌면 나라에서 장려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매치기에 의한 피해가 많았다. 내가 신혼여행을 떠나기 보름전 회사에서 두 여직원이 함께 이탈리아를 다녀왔는데 그 일행은 6일의 일정을 지내면서 로마에서만 2번의 소매치기를 당했다. 길거리에서 한번, 버스에서 한번.

 

 

길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방식은 간단하다. 긴 비단같은 것을 판매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이 한손에는 천을 죽 늘어뜨리고, 다른 손에는 손가락에 동전을 들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보여주는 척 하며 다가온다. 그러다가 그 천으로 가방 근처의 시야를 가리는 찰나 손이 가방안으로 쑥 들어왔다는 것이다.

버스에서도 유사한데, 한쪽팔에 자켓을 두르고 한손으로는 버스 손잡이를 잡은 사람이 가까이에 서서 시야를 가리고, 다른 한사람이 다가와 가방이나 주머니에 또 쑥 손을 넣는다.

 

 

여행객은 소매치기의 좋은 타겟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나라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일 뿐더러 한번에 가지고 다니는 현금이나 값나가는 물건이 현지인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당국에서도 나라의 이미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는 있지만 경찰수를 늘려 단속을 강화해도 현장검거만 조심하면 크게 뒤탈없는 소매치기가 쉽게 근절될리 없다. 유물 보호차원에서 가로등이나 CCTV설치도 쉽지 않다. 이러한 환경을 먹이삼아 소매치기는 더 조직화되고, 더 대범해진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듣게된 여러 경험담은 더욱 가관이다. 셀카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하늘로 들어올리고 각을 맞추는데 어디서 휙 나타난 소매치기가 카메라를 낚아 채가는가 하면, 렌즈가 비싸다는 것을 알고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카메라의 렌즈를 쏙 뽑아 가기도 한다고 했다. 여행용품 중 카메라와 렌즈의 비중이 컸던 내게는 더욱 부담이 되는 얘기였다. 그래서 여행짐을 꾸릴 때에도 아내는 끝까지 렌즈를 많이 가져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로마에서 조그만 사람이 많아지는 곳이다 싶으면 주위를 경계하고, 가방을 움켜쥐었다. 긴장하는 만큼 여행의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주변경관에 감탄하다가도 흠칫 놀라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이는 나보다 아내가 더 심했는데, 소매치기 노이로제에 걸릴것만 같았다.

 

 

 

두번째는 담배연기다.

밀폐된 공간이 아닌 모든 공간은 흡연구역이다.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교통문화를 본다면 선진국이 분명 맞는데, 사람이 있건 없건 어디에서나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몰지각함은 아무리봐도 그렇지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길을 걷는데 앞에서 담배연기를 후후 뿜어가면서 씩씩하게 걷는 사람을 보면 쫓아가서 뒤통수를 후려주고 싶은데, 이건 뭐 사방에서 담배를 피워대니 담배연기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성질이나서 또 머리가 지끈거렸다.

떼르미니역에서도, 나보나광장에서도, 트레비분수에서도, 바티칸에서도, 그냥 담배만 피워댔다. 기차안에서는 도대체 이 흡연자들이 어떻게 담배를 참는지 의아할 정도로 기차에서 내리면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간접흡연자는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문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은 1992년에 만들어졌고, 배경은 1970년대이다. 영화속에서 담임선생님으로 나오는 '신구' 아저씨가 교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생각났다. 그리고 어렸을 때 머리맡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불과 20~30년전만 해도 우리도 그게 당연했다. 실내에서도 당당하게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그건 몰랐기 때문이다. 간접흡연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지했고 세대가 바뀌는 과도기에 가장이나 남성들의 권위가 지금보다 자못 높았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뭔가. 중국이나 된다면 경제성장을 국민의식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라도 하겠다마는, 간접흡연이 주변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걸 모를리 없고, G7의 선진국이 금연정책에 대해 이렇게 소극적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곧 택시안에서 택시기사가 승객탑승 유무와 관계없이 절대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한다는 법안의 예고를 접했다. 박수가 절로 나왔다.

2012년도 부터 이탈리아 관광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관광 성수기에도 오히려 매출이 급감하여 고심하고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이탈리아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2% 이상이다. 관광객은 담배연기를 맡기위해 이탈리아를 찾는것이 아니다.

 

 

 

세번째는 음식. 정확히 말하면 나트륨이다.

나름대로 한국에서 피자와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식품을 상당히 즐겨먹는 편이었던 나는 음식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농담조로 원래 파스타 먹으려면 이탈리아 정도는 가줘야 하는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보다 2주 먼저 이탈리아를 다녀온 회사동료가 음식때문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촌스럽게 왜들 이러냐고 면박을 주었다. 그런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 나에게 닥쳐왔다. 문제는 단순히 음식의 종류가 아니라 '간' 이었다. 영어로라도 소금을 조금 넣어달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생각을 못하고 소금 덩어리를 주는대로 씹어먹었다. 이사람들은 내장의 구조가 다른가? 며칠만 더 이렇게 음식을 먹었다가는 온몸이 소금에 절어 쭈글쭈글해 질것만 같았다. 소금을 많이 먹으니 물이 벌컥벌컥 먹혔는데, 물은 또 유료였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면서 '물 드릴까요?' 하길래 아주 여유있게 '네 주세요.' 했는데 완전 큰 유리병에 물을 담아주고 금액이 청구되었다. 물론 물이 유료라는걸 모르고 간건 아니었지만 음식을 짜게 주면서 물에대해 돈을 받으니 부아가 치밀었다. 때려놓고 약 팔아먹는 격이랄까.

 

이럴 때 인터넷은 신이었다.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어 비를 만나는 것과 같이 우린 머나먼 이국땅에서 네이버에 답을 물었다.

'뽀꼬쌀레' 영어로 치면 '리틀솔트' 였다. 소금 조금만 넣어주세요. 이 말을 뒤늦게 알아 그다음부터는 그나마 음식을 짜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아내가 챙겨온 세개의 컵라면은 하늘이 내린 음식이었다. 농심 신라면은 '神' 라면이 분명했다. 피렌체에서 조식을 먹는데 내가 얼큰한 온기를 뿜어내며 신라면을 들이키자 옆에 있던 한국인 커플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한입 먹고싶은 눈빛이었다. 진심으로 나눠먹고 싶었다.

 

알랭드 보통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곳에서만 있을 수 있는 변수를 여행의 진짜 묘미라고 했다. 소설가 무라카미하루키는 심지어 멕시코를 여행하며 자신이 탄 버스가 무장강도를 당해 총격전의 한가운데에서 벌벌 떨었는데, 다녀와서는 그것이 여행의 맛이라고 자부했다. 어쨌든 그마저도 살아돌아왔으니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돌아보자면 내게있어 이탈리아의 음식도 처음에는 미칠듯 스트레스를 받게 했던 부분이었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여행의 맛이었다고 능청스럽게 말하지 못하겠다.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런 음식이야말로 그 여행에 진정으로 녹아드는 부분이라는걸 내 머리는 안다. 그런데 내 몸은 김치만 아는걸 어떻하나. 인터넷으로 찾은 로마의 한(韓)식당에서 영혼까지 충전했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햅번이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세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을 믿고 분수에 동전을 던진다.

소매치기와 담배, 그리고 음식. 이 세가지를 생각하면서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 분수에 동전을 던질껄 하고 후회하게 만드는 한가지가 있다. 바로 바티칸. 미켈란 젤로이다.

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졌지만 숭고하기 까지한 인간의 영역. 수천년을 뛰어넘을 그의 업적이 모든 불편함을 씻어내렸다.

그 위대한 작품들을 생각하면, 아.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졌어야 했는데. 하며 무릎을 친다.

 

 

스탕달신드롬은 스탕달이 레니의 그림 '베아트리체 첸치' 를 보고 실성했다고 하여, 예술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아 혼절하는 것 같은 경험을 일컫는다.

그런데 스탕달이 베아트리체 첸치를 본것이 아니라 미켈란 젤로의 작품을 보았다는 설이 있는데, 나는 그 설을 지지한다.

아마 여행객중 스탕달 신드롬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가장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이 미켈란젤로의 작품 앞에서가 아닐까 한다.

신의 영역에 닿은 인간의 업적을 보기위해 공통의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세계에서 매년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이탈리아를 다녀간다.

 

 

그래. 나는 편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찾은것이 아니었지. 감동을 받기 위해 이탈리아를 찾은 것이었다.

어리광섞인 불평을 늘어놓다 보니 슬슬 로마가 다시 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