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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ong
작년 12월,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한라산을 오를때, 이미 몸에 무리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암벽등반을 취미로 하는 한분과, 매일 20km 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또 한분 사이에서, 자칭 산악인인 내가 쳐지는 것이 싫어 빠른속도를 그대로 쫓아올라 다녀왔지만, 남은 것은 왼쪽 발뒤꿈치 '족저근막염'과 오른쪽 무릎의 '슬개건염' 이었다. '곧 괜찮아 지겠지' 하고는 치료의 적기를 놓쳐 만성에 이르렀는데, 10분이상 제자리에 서있거나, 조금 빠른 속도로 걷기만해도 이내 시큰시큰 기분나쁜 통증에 정신을 빼앗긴다. 통증은 시각까지 지배하는 것인지 한번 통증이 시작되면 제 아무리 금수강산이 눈앞에 펼쳐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통증은 나의 가장 큰 취미였던 산행도 함께 앗아 갔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숨이 턱턱..
시간에 대한 인간의 욕망 두가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맘, 미래를 내다보고 싶은 맘. 오늘에 존재하지만 어제와 내일에 매여 오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DNA에 새겨진 동물적 습성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꿈을 통해 미래를 예견한다는 예지몽. 바라는 것이 많을 때에, 꿈에 의존해 어떤 일들을 기대했다. 일어난 일들을 꿈에 맞춰 그 신통함에 머리를 조아렸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개꿈이라며 합리화 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게 된 어느날, 너무도 정교한 실험과 정연한 기록에 나는 환상을 좇아내고 실물을 접한다. 꿈은 일상의 기억이 조합되어 무의식 속에서 다시 표출되는 각성 현상. 미래를 보는 눈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상식과도 같았던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닌데, 왜 그전에는 무시했는가...
컨텐츠는 '감동' 을 주거나 '재미' 를 주거나 둘중 하나다. 사회적으로 문화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질 수록 컨텐츠는 더이상 '놀거리'에만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범위가 확장된다.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보편화 되고 있는 총체적 자원이 곧 컨텐츠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컨텐츠는 곧 자산이자 자본이다. 즉,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하는 자가 자산가이자 자본가가 된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주체가 부를 누린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모처럼의 금요일밤을 맞아 아내와 나란히 거실 스피커 앞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아내가 추천해준 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 4악장이다. 곡의 중간중간 2악장의 주제멜로디가 첼로 선율로 연주된다. 첼로를 받쳐주는 피아노 연주가 지날 때 스피커..
1970년대 문학을 두고 시(詩)는 김지하의 '오적' 부터, 소설은 황석영의 '객지' 부터 라는 말이 있다. 시대를 통찰하는 대표적 문학작품으로 대단한 찬사를 받는 셈이다. 오랫동안 벼르다 '객지' 를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객지'는 남한 사회가 대규로 산업화에 돌입한 이후 최초로 노동자 쟁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고, 열악한 노동현장의 착취를 노동자의 시각으로 밀도높게 구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객지의 작품발표를 기점으로 전개된 노동운동과 노동 문학에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근 촛불혁명으로까지 불리우는 국민들의 결집과 불의에 대한 항거는 특정 사건을 계기로 도화선이 되기도 했지만, 지속적 계몽의 결과다. 이 계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 영화보다 더..
제주까지 와서 고작 중문 스타벅스에 홀로 앉아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무얼하고 있나. 차가운 공장의 대량 제조과정을 거쳐 인위적으로 뽑아진 채 망연히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진 한라봉 쥬스는 서울에서 먹던 표준화된 오렌지 쥬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득 스타벅스에 걸어들어오며 스치듯 지나친 한 노인이 생각났다. 횡단보도와 스타벅스 사이의 벤치 옆에 꾸그리고 앉아 좌판을 깔아놓은 행상 할머니. 할머니는 분명 귤을 팔고 있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지. 귤을 사먹자. 책을 접어 넣고, 탁자에 놓인 쥬스를 한입에 들이킨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망에 20개가 묶인 귤은 고작 3,000원. 방금 스타벅스에서 마신 한잔의 쥬스가 5500원이었다. 귤을 한망 달라고 한 뒤 슬쩍 옆에 벤치에 앉..
주림과 포만의 중간쯤, 그래도 조금은 주림 쪽에 더 가까운 약간의 시장기. 포만감의 굴레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 본 사람은 그 날아갈듯한 가벼움을 함부로 놓지 못한다. 물 한모금을 목구멍에 밀어넘기면 울떡거리는 목젖을 너머 식도를 지나 위장으로 스륵 내리는 물의 길이 고스란히 느껴질만큼의 공복. 비로소 그 상태일 때 사람은 가장 총명해지는 것 같다. 한 젓가락, 한 숟가락의 밥을 붙들다 그만 턱밑까지 채워져버린 식탐은 눈빛을 흐리게하고 몸을 무르게 한다. 숨쉬기도 버거워 뒤로 몸이 절로 젖혀질 만큼 채워넣고는 지금 또 후회한다. 거북스런 속과 미련스러운 그 모습일 알면서도 왜인지 매번 끼니때마다 반복되는 이 모습은 내가 몸의 주인이 아리나는 증거. 소박하고 이른 상으로 하루 마지막 끼니를 거두고 손에 잡히..
마지막 축가 결혼을 앞둔 동욱이의 축가 부탁에 마음이 무거웠다. 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 '제네시스' 에서 함께 활동하며 호흡을 맞춰온 동욱이는 그시절 낭낭했던 내 목소리만을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서울시 동아리 한마당'을 비롯해, 고등학교 3년 내내 크고작은 대회의 상을 휩쓸었던 당시의 우리는 모두 평생 음악을 하며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제네시스 활동은 내게 단순히 학창시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당시 평탄치 않았던 환경 하에서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성장하는데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영향을 미쳤다. 연습실에서 흘린 땀, 함께 울고웃던 동기와 선후배들, 무대위에서 듣던 함성,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던 허무함과 아쉬움. 이 모든것들이 나를 가르..
군 입대 날자를 두 달 여 앞두고 아르바이트로 선택한 일은 모교 고등학교의 급식 알바였다. 후배들에게 밥을 해 먹인다는 즐거움까지는 없었지만 존경했던 선생님들을 자주 뵙고 추억 어린 교실과 복도를 거닐며, 평균보다 높은 시급에 남은 반찬을 싸가지고 집에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였다. 할머니와 생활해던 당시 그날그날 남은 급식반찬을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가는 날은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 몹시도 더웠던 5월, 어버이날이 지나고 스승의 날이 가까워질 무렵. 땀을 뻘뻘 흘리며 식차를 들어 나르던 어느날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반갑고 정중히 인사하던 내게 대뜸 말했다. '고광팔이, 내 너 이렇게 살줄 알았어~' 이름의 끝자를 늘 '팔' 자로 바꿔서 부르던 경상도 억양이 짙은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