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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 기행 [2013.3.30] 본문

사진과 여행

사량도 기행 [2013.3.30]

꽃노래 2015. 8. 8. 00:47

요즘한창 여행다니는 맛이 들려 여수를 다녀온지 2주만에 다시 사량도 지리망산을 찾았다. 사량도는 경남 통영이나 삼천포에서 배를 타고 한시간 정도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남해의 어느 섬이다. 바다속의 산이 물 위로 올라오면 섬이 되기 때문에 섬은 산행이나 트래킹 코스로 유명한곳이 제법 많다. 사량도는 8km 남짓 종주코스로 최근 아웃도어 열풍과 함께 부쩍 각광받고 있다. 특히 높이는 해발고도 398미터로 400미터도 채 안되는 나지막한 섬이다. 높이만을 두고 육지와 비교한다면 심심하다고 생각할 테지만 섬의 특성상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어느정도만 올라가도 시야가 트이고, 바다로부터 솟아있는 산이기 때문에 해발고도 398미터가 꼬박 올라가야 하는 높이다. 육지의 산과 비교한다면 50~60미터 정도는 더 높다고 봐도 된다.

 

전남이나 경남쪽, 특히 섬같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지역은 수도권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녀가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단단히 맘먹고 움직여야 할 뿐만 아니라 왕복 교통편만 하더라도 비용이 상당하다. 직접 운전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그 피로도는 말할것도 없다. 얼마전 여수를 다녀올 때에도 직접 운전을 해서 다녀왔는데 그나마 두명이 교대로 운전을 해서 망정이지 혼자 다녀온다면 졸음이 쏟아져 몇 번을 쉬었다 가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난 여행사나 산악회를 애용한다. 여행사나 산악회를 통해서 단체로 움직이면 비용이나 체력적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사량도만 해도 배삯이 1인당 만원에 고속버스를 타고 통영까지 간다고 하면 편도 3만원 이상은 생각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단체 버스로 1인당 왕복 42000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물론 배삯도 포함됐다. 더구나 산행지도와 안전설명, 잘 찾아보면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오며가며 편안하게 자고, 도착해서 산행을 하고 바로 돌아오면 된다. 여럿이 함께 움직이지만 서로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라 신경쓰지 않고 함께간 일행들 끼리만 무리지어서 움직이면 된다. 여행코스가 여러곳으로 짜여져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함께 이동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여행’보다는 한 개 코스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산행’이 더 좋다.

 

밤 11시에 동대문운동장에서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어김이 없이 시간을 맞춘다. 몇 년간 단체산행을 하면서 새삼 느낀점 중 하나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의 시간관념이다. 늦은밤 출발하는 차시간도 그렇지만 새벽 5시, 6시에 출발하는 단체버스는 여간하면 한 두사람 늦을 법도 한데 출발 5분전이면 모두 도착해서 출발을 기다린다.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남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탓일 수도 있고, 산을 열심히 다닌다는 자체가 그 사람의 부지런함을 나타내는듯 원래 부지런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아마 양쪽 다 맞는 말일것이다. 2년전 일출을 보기 위해 지리산을 가는데 일행한명이 늦어서 차를 10분정도 붙잡아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민망함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모든 시선이 한몸에 꽂히고, '젊은놈들이 어른들을 기다리게해?' 라고말하며 손가락질 받는 느낌. 이후로 단체버스를 이용할 일이 있을 때 그 부담감에 꼭 10분 전에는 미리 도착해서 차를 기다린다. 긴장감에 밤잠을 설치더라도 지각은 없다. 그런데 하필 또 오늘 남양주에서 오기로 한 지원이놈이 시간이 임박하도록 도착하지 않아 진땀을 뺐다. 다행히 늦진 않았지만 녀석과 함께 탑승하니 버스는 한참을 기다렸다는듯이 바로 출발했다. 역시... 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고, 두 녀석에게 산사람들의 시간관념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한참을 자는데 두 번정도 휴게소에 멈춘것 같다. 운영자의 안내방송에 눈을 떠보니 시간은 새벽5시. 6시간을 꼬박 달려 통영에 도착했다. 며칠이어서 야근을하고 피곤한 몸을 차에 실으니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모처럼 푹잤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박2일 여행간다고 어설프게 낮잠이라도 잤다가 밤에 버스안에서 제대로 못자면 그다음날 일정은 그대로 떡실신 되기 십상이다. 여러번의 무박여행 경험으로 얻은 결론은 피곤한 상태로 버스에 타자마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푹 자는게 최고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오늘 늦을 뻔한 녀석이 다름 아닌 낮잠을 자다가 늦을 뻔한 것 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통영까지 오는 차안에서 거의 잠을 못자 이제 막 피곤해 하고 있었다. 100kg이 넘는 몸집에 잠까지 못잤으니 아무리 400미터의 산이라고 해도 오늘의 일정이 매우 고생스러울 터였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불안감과 함께 슬라이드처럼 스쳐갔다.

 

새벽에 통영에 도착하면 반찬과 국을 제공해준다고 해서 햇반을 덜렁덜렁 싸왔는데, 전자렌지에 돌리지 않은 햇반은 '찬밥'이 아닌 ‘쌀' 인것을 몰랐다. 어떻게든 국에 말아서라도 먹어보려고 하는데 도무지 생쌀을 씹는것 같아 결국 다 버리고 말았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마구치현에 있는 무인도를 여행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많아 여행을 망치는 경우를 이야기 했는데, 우린 벌써 식량과 체력 두 가지 조짐이 있었다. 다행히 산악회 운영진 분들께서 밥을 나누어 주어 굶주림은 면했지만 사람도 없고 설악산 같은 높고 깊은 산이었다면 심각한 재난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새벽의 부둣가는 아직 뜨지도 않은 해를 무시라도 하는 듯 활기가 넘쳤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러 가는 수산시장 골목을 따라 많은 할머니들이 장을 깔고 있었다. 그 많은 생선이 어디서 다 잡혀 올라왔으며, 이렇게 파는 사람은 많고 사는 사람은 적은데 돈벌이가 될까 걱정이 되었다. 농촌이든 어촌이든 노인들의 영역이 된지 오래다. 측은함을 느낀다기보다 그 틈바구니에 젊은 사람이 앉아 있다면 얼마나 어색해보일까를 생각했다. 이미 나의 의식속에도 젊은 사람이 시장에 앉아 물건을 파는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리잡혀 있는것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반증한다. 장터의 노인들은 아마도 서울에 나간 자식들 잘되기를 바라면서, 노인들이 지식의 창구로 존경받던 시대를 가끔 떠올릴 것이다.

 

작년 여름 다녀왔던 영주 부석사 어느 막걸리집에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화환이 놓여있었던것이 생각났다. 세명의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매우 맛있는 식당이었다. 세 할머니 중 어느분의 자식이 보낸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화환에 돋은 잎이 제법 무성한 것으로 보아 일 이년은 족히 지나보였다. 자식은 화환만큼 무심해도 노인은 매일 화환을 들여다보면서 자식건강하길 바랄 것이었다.

 

배는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타는것 같다. 3년전 외도를 갈 때, 작년엔 제주도에서 우도를 갈 때, 올해는 사량도를 가면서 탄다. 그래서 낯설지 않고 그만큼 설렘도 줄었다. 하지만 사량도로 들어가는 배편이 지금까지 타본 배중 가장 긴 코스를 지날터였고, 일출 시간과 겹쳐 선상에서 일출을 보는것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떠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고 이미 해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개가 끼어 날이좀 흐렸으므로 ‘그래 안개가 끼어서 일출도 못봤을거야’ 라며 되지도 않는 위로를 하고 앉았다. 씁쓸했다.

 

선착장에서 사량도 지리망산으로 이르는 길은 딱 한갈래 뿐이라 그냥 좁을 시골길을 따라 주욱 걸었다. 밭 이랑을 도는데 우적우적 황소가 여물을 먹고 있었다. 파리도 없는데 꼬리를 휘적휘적 흔들어가며 여유있게 여물을 먹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니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는 자태다. 쩝쩝하는 소리가 들린다. 앞에 서있는 농부가 여물을 한 아름씩 모아다가 소 있는 쪽으로 휙휙 던지는데 던질 때마다 소 얼굴에 와서 툭툭 맞았다. 먹고 있는데 여물을 얼굴에 집어던지다니.. 툭툭 맞으면서도 우적우적 먹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며 사진을 찍었다. 소 입장에서는 체면 좀 구겨지는 일이다.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이 나타난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거구 지원이 녀석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더니 함께 도착했던 다른 일행들과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7시에 산행을 시작해서 배가 출발하는 12시반까지 도착해야 하니 총 5시간 반이 주어진 셈이다. 보통 여자들도 4시간이면 끝낼 코스라고 설명을 해줬으니 여유가 좀 있긴 한 편이었다. 다만 배편을 놓치면 따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문제가 있어 적잖이 부담도 되었다. 우선은 부담을 갖고 무리해서 오르면 나중에 더 속도가 안나는 법이라 여유있게 가자며 다독였다. 엄홍길 대장님이 말씀해주신 ‘등산의 최적속도’ 를 일러주면서 대화가 가능한 속도를 강조했다. 결국 산행은 재미있어야 하고, 단순히 오르기 위해 오르는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오래가지 못했다.

 

초반부터 벼랑을 잡고 기어오르는 난코스에서 예정보다 한 시간을 지체하면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혼자 막 올라가다가 뒤돌아보면 친구놈이 보이지 않아 다시 내려가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탁트인 절경도 즐길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초조했다. 돌아와서 보니 전례없이 풍경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 안개가 기어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만큼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친구놈은 힘든 만큼 짜증이 날법도 한데 원체 착한녀석이라 계속 미안한에 어쩔줄을 몰라했다. 땀에 절은 면티는 허옇게 소금이 서리고 업친데 겹쳐서 중간에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대략 난감하기도 했다. 낮은 산이지만 듣던대로 또한 코스가 여간 험한게 아니어서 조심조심 이동하다보니 세 시간을 걸었는데 중간정도 밖에 못가 급기야 총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간에 샛길이 없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육지 같으면 중간에 어느 길로든 내려가서 하산만 하면 되지만, 사량도에서는 목적지에 당도해야만 육지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더욱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코스라서 어떻게든 동쪽 끝으로 가긴 가야했다. 마음이 급해지니 난 조교가 되기 시작했다. 하필 또 붉은 계열의 옷을 입고 있어서 친구놈은 날 보며 훈련소를 떠올렸다. 산이 어디 도망가는거 아니니까 정상에 못올라가도 다음에 또 오면 된다고 호기좋게 떠들어댔던게 무색해졌다. 배를 놓치고 남자셋이 여관을 잡고 여기서 자고 간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절대 그런일은 일어나서는안될 일이었다. 여자랑 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총무는 마지막 구름다리 쪽으로 들어가는 코스를 진입하기 전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10시30분 이전에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샛길로 내려가라고 일러주었다. 구름다리는 사량도 산행 코스의 하이라이트였다. 내가 했던 말이 씨가 되어, 산이 어디 도망가는게 아니니 구름다리는 다음에 와서 다시 봐야했다. 불안한 마음에 애꿎은 지도와 시계만 자꾸 쳐다봤다. 어떻게든 늦지 않기 위해 계속 거리를 확인하고 시간을 계산했다. 11시에 갈림길을 만나 하산로로 방향을 잡았다. 우선 하산길을 만났다는 것이 반가웠지만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는 하산이 더 힘들 수 있었다. 특히 친구놈 같이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경우에는 무릎에 심각한 무리가 올 수 있어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현석이와 둘이 내려오다가 뒤를 돌아보면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저만치 내려오고 있었다. 이 속도를 유지해야 배를 탈 수 있다. 자꾸 쳐지는 지원이를 채근했다. 가방과 옷은 이미 진작에 현석이와 내가 나누어 메고 더 이상 들어줄 것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니 뱃살이라도 대신 들어주고 싶다’ 놀려대며 계속 보챘다.

 

한시간 정도 내려오니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심리가 고약해서 눈에 보이면 맘이 더 급해진다. 화장실도 오래 참다가 변기앞에 가면 더 힘이 빠지는 그런원리인가. 손에 닿을 듯 가까운데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지쳐 쓰러질듯 보여서 잠시 멈췄다가 새벽에 아껴둔 샌드위치를 한 조각씩 나눠먹고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다행히 제시간에 항구에 도착했다. 비록 하이라이트 코스를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기쁨은 제법 컸다. 구름다리쯤 정말로 다음에 또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고맙게도 가장 고생했던 지원이가 체력을 길러 다음번엔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말을 했다. 내가 다음엔 너의 체력을 충~분히 고려해서 코스를 짜겠다고 하자 듣던중 반가운소리 라며 맞장구를 쳤다.

 

부랴부랴 배를 타고 다시 곯아떨어졌더니 어느새 삼천포에 도착했다. 왕복 2시간이 넘는 배의 이동시간은 고스란히 잠과 교환했다. 버스와 다를게 없었다. 삼천포에서 허기지고 지친몸을 달래기 위해 횟집에 들어가 광어를 주문했다. 집앞에서 1kg에 15000원인 광어가 삼천포에서는 5만원이었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진 관광객에게 대체제는 없었다. 그냥 부르면 값이었다. 그나마 맛이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무얼 먹어도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배불리 먹고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이 30분정도 남아 천히 부둣가를 걸었다. 한잔에 1000원씩 종이컵에 타주는 커피를 사들고 후후 불면서 저멀리 오가는 어선들을 구경했다. 부둣가인데 유난히 갈매기가 없었다. 고기잡이 배가 다니는 곳이라 갈매기가 먹을 것이 없는가보다 생각했다.

 

여행은 항상 변수가 있고, 그래서 더 뜻깊다. 생각대로 척척 진행되는 여행도 계획한대로 짚어가는 맛이 있지만, 이렇게 변수가 생겨서 의지대로 되지 않는 여행도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면 당연히 후자쪽이다. 다음달에는 내 여행지기 후배 남형이와 일본을 다녀올 생각이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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