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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2011.5.11] 본문

되짚어보는 일상

자화상 [2011.5.11]

꽃노래 2015. 8. 7. 13:58

명서(名書)란 것이 머리가 크고 생각이 달라지면서 그 와닿는 바가 전과 같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시(詩)가 주는 느낌 또한 이렇게 깊이가 다른 줄은 미처 몰랐다.

 

 

                     -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청년 윤동주가 애증하였던 그 '사나이'가 '해방을 그리는 조국'이었는지

'사랑에 애태우는 자기 자신'이었는지는 명확히 알길이 없으나,

식민치하의 조국아래 청운의 꿈은 다만 그의 붓 끝에서 

한없이 맑고 서정적인 은유가 되었다가, 한없이 매서운 투서(鬪書)가 된다.

 

스물여덟 아까운 삶을 새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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