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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2015.7.26] 본문

되짚어보는 일상

그때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2015.7.26]

꽃노래 2015. 8. 8. 00:56

보르헤스의 단편소설에서 늙은 작가 보르헤스가 공원을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아있는 젊은이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젊은이는 과거의 자신이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에단호크 주연의 영화 타임패러독스에서도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을 조우하지만,

처음에는 이들 역시 서로가 자기 자신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결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생길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사를 하며 발견한 일기장을 통해 나는 중학교시절의 나를 만났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영화속의 일은 아니더라도 서른 네 살의 내가 열 여섯의 나를 만났다.
일기장속에 담긴 중학생의 나는 자신의 첫키스 상대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이 고민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물음이 그때 그에게는 첫키스였다.
신촌에가서 힙합바지를 사입고 와서 아버지에게 얻어맞는가하면, 포르노 비디오를 돌려보고, 군포시청까지 가서 춤을추고 상을 받아왔다.
마치 오래된 범죄의 증거를 들킨것처럼 부끄러움에 얼굴을 싸 쥐었지만, 지난날의 나를 만난다는 묘한 설레임이 있다.


6년 전 살던 집앞의 어느 빵집에는 하루종일 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빵집 아저씨가 있었다.
그집은 특히 야채빵이 맛있었는데, 퇴근 후 집앞에서 그 야채빵을 한봉다리 사들고 귀가하는 것이 당시의 큰 행복이었다.
그 집의 빵이 맛있다고 느끼기도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빵집 아저씨의 팔에 남아있는 흉터였다.
흉터는 양쪽 어깨부터 팔목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얼핏보면 화상자국 같아보이기도 했다.
양쪽 어깨부터 팔목까지 살을 뭉개놓은 것처럼 균일하게 화상을 입기는 힘들것이다.
자세히보니 거뭇거뭇한 자국이 있었다. 문신을 지운것으로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빵집 사장님의 외모도 그런 결론을 내리게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빵을 사던 안사던 그 앞을 지나던 나는 항상 그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비가오나 눈이 오나, 아침이나 밤이나 앉는 방법을 모르는듯 빵집 아저씨는 항상 빵집 안에 서 있었다.
손님이 오면 오는대로, 티비를 보면 보는대로 그저 서서 하루를 보냈다.
어쩌다 아르바이트생이 대신 빵집을 지키는 날 아르바이트생이 앉아있는것으로 보아 빵집안에 의자가 없는것도 아니었다.
아저씨는 문신을 지우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서서 젊은날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동창회를 하던 어느날 한 친구가 나에게 '넌 쓰레기였다' 라고 했다.

난 잊었지만 그는 십수년간을 그 일을 떠올리며 나를 미워하고 당당히 대응하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을것이다.



삶에 후회가 없을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마주할 수는 있다.
오늘의 나를 미래의 내가 측은하고 조금은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유한한 삶에 후회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